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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은 1860년 8월 15일에 태어나 1869년에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연해주 한인 1세대로,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 항일독립운동의 대부이다. 가난한 소작농 출신이었지만 자수성가하여 축적한 막대한 재산을 아낌없이 독립운동을 위해 지원했다. 의병 조직인 동의회와 우리 동포에게 일자리를 소개하고 교육을 보급한 권업회의 창설을 주도했으며, 항일무장투쟁사에 빛나는 승전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도 선생의 손길이 미쳐 있는 등 그의 존재를 빼고서는 연해주 지역에서의 독립운동을 기술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물심양면으로 우리 동포들을 보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던 그에게 연해주 한인들이 붙여준 별명은 ‘페치카(난로)’였다.
1920년 4월 일본군은 최재형 선생의 집이 있던 우수리스크를 급습했다. 최재형 선생은 4월 5일에 체포돼 4월 7일 순국했다. 최재형 선생의 시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으며, 우리 정부는 19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후손의 요청에 따라 1970년 서울현충원에 가묘를 만들었다. 그러나 후일 이 후손이 가짜였음이 드러나고, 가묘는 멸실됐다.
주 키르기스스탄 대사관은 2021년부터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협조,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봉환해 서울현충원 가묘 자리에 모시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법률상 유골이나 시신이 있는 경우에만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어 시신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최재형 선생의 경우에는 부인의 유해를 봉환해도 묘를 조성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기념사업회 측은 서명 운동 등을 통해 여론을 조성했고, 국가보훈부도 취지에 공감해 법 개정에 착수했다.
마침내 2023년 6월 30일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도 배우자의 유골과 함께 안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고 7월 18일 시행돼 광복절에 맞춰 유해를 봉환할 수 있게 됐다. 지면을 빌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국가보훈부, 국회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는 8월 7일 티웨이 항공 국적기로 인천공항에 도착, 8월 14일 부군의 위패와 함께 서울현충원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안장된다. 또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을 11일 국내로 반입해 12~13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마련되는 국민추모공간에 최재형 선생의 위패와 함께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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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뒤인 8월 15일은 광복 78주년, 최재형 선생 탄생 163주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