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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탈북민 지원한다더니…라오스 주재 대사관 '예산 사각지대'

지영의 기자I 2023.06.23 06:30:00

외교부 내부 문건 단독 입수
주 라오스 대사관 업무추진비 유흥업소·골프장서 사용
업무추진비 사용 규정에 위배
외교부 “공산 군부 국가에서 탈북민 구하기 위한 것”
전문가 “세금이니 국민정서 반하는 사용 막아야”

[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탈북민의 주요 경유지로 활용되는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탈북민 관련 공무에 사용해야 할 업무추진비를 유흥업소·골프장 등에서 부당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업무추진비 사용 규정상 허용이 안 되는 곳에서 예산을 집행한 것이다.

외교부는 예산 유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공산 국가에서의 외교관계 형성이 쉽지 않아 불가피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라오스 국가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국민 세금인 만큼 규정에서 벗어난 예산 사용은 지양하고, 오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탈북민 지원예산인데…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논란

22일 이데일리가 단독 입수한 외교부 내부 문건에 따르면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은 본예산 업무추진비 중 ‘민족 공동체 해외협력사업’ 예산을 최근 5년간 유흥업소와 골프장 등에서 22차례 사용했다. 입수된 일부 문건 상 확인된 횟수로, 전수조사를 시행할 경우 유용 사례는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족 공동체 해외협력사업비는 제 3국에 체류하는 탈북민을 국내로 이송하기 위한 업무 등에 사용하도록 별도 배정되는 예산이다. 라오스 한국대사관은 이 예산을 업무추진비 규정에 맞지 않는 곳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해 왔다.

일례로 지난 2018년 9월21일 주 라오스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공안부 이민국 친선 축구시합을 개최한 뒤 만찬을 진행했다. 대사관 측은 이날 축구장 이용료, 만찬비, 호프집 등을 포함해 총 4523달러(당시 한화 약 500만원대) 가량의 비용을 업무추진비로 지출했다. 라오스 현지 취재 결과 예산 내역에 호프집으로 기재된 곳은 유흥업소로 확인됐다. 대사관 측은 해당 유흥업소에서 라오스 현지화 기준으로 281만킵(당시 기준 약 330달러)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업무추진비를 골프에 사용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정영수 주 라오스 대사는 지난 4월16일 공사참사관과 1등 서기관 등을 동행해 현지 고급 골프장으로 라운딩을 갔다. 이날 지출된 그린피와 렌트비, 캐디피 등 총 라오스화 775만5 000킵(461.01달러)은 전액 업무추진비로 집행됐다. 특히 캐디피와 별개로 사적으로 지불해야 할 개인 캐디팁까지 업무추진비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라운딩을 포함, 19차례 진행된 골프에 평균 수백~수천 달러의 업무추진비를 집행한 내역이 확인됐다.

그래픽=지영의 기자
업무추진비 부당사용은 국가재정법 및 기획재정부 지침 위반에 해당한다. 국가재정법 제44조 및 45조에서는 예산 사용을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르도록 하고 있으며, 세금으로 배정되는 예산의 ‘목적 외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기재부와 법조계에서는 라오스 대사관의 업무추진비 사용이 국가재정법 및 예산 지침을 위반하는 사용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기획재정부 예산기준과 관계자는 “기재부에서는 세금의 투명한 사용을 위해 국가재정법에 근거해 지침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정부부처도 이 지침 내에서 기준을 마련해 쓰도록 하고있다”며 “기본적으로 기재부 지침이 정하는 범위를 위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도 “기재부 지침을 위반했다면 국가재정법에서 정하는 세금 위탁 취지를 벗어나는 것”이라며 “당연히 국가재정법 위반 소지가 있고, 더 나아가서 업무상 횡령·배임 문제로 형법상 처벌까지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사용처뿐 아니라 예산집행 방법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통상 업무추진비는 공무적 사용을 명확히 입증하고 사용처를 제한하기 위해 클린카드(공무용 법인카드)를 이용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재외공관 회계처리 지침에 따르면 소재지 여건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 현금 사용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증빙자료를 첨부해야 한다. 라오스 대사관은 탈북민 관련 예산을 쓸 때 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하고 출처·날짜 정보 없이 수기로 작성된 간이영수증을 제출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라오스 현지에도 전통시장을 제외하고는 업장마다 포스기 및 전자 단말기가 보편화 돼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관리가 허술했다는 비판이 제기될만 하다.

외교부 내부에서는 라오스 대사관 관계자들의 이같은 업무추진비 사용이 오랜 기간 상습적으로 지속된 병폐라는 증언이 나왔다. 외교부 내부 관계자 A씨는 이데일리에 “이외에도 부당하게 유용한 사례가 많은데 업무추진비 사용 체계가 극히 허술한 만큼 전면적 감사가 필요하다”며 “외교부 자체 감사가 아니라, 감사원 등의 외부 기관에서 라오스 공관을 포함해 외교부 재외공관 전반에 대규모 감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외교부 “공산국가라 탈북민 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외교부에서는 업무추진비를 부당 이용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현지 여건에 맞는 불가피한 외교활동의 일환이었다는 해명을 내놨다. 공산주의 군부 국가인 라오스 현지 외교 여건이 녹록지 않아 해당 정부 관계자 접대에 사용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측은 “라오스 공무원들과 탈북민 업무 협의를 위해 불가피하게 사용해온 측면이 있다”며 “내부 감사에서 일부 예산 사용의 문제를 발견해 개선했고, 앞으로도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라오스 대사관 측에서는 업무추진비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라오스 대사관 관계자는 “외교부에서 허용하는 데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 외교 전문가들 “국민 정서에 반하는 세금 사용은 없어야, 대안 마련 시급”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외교부 측 입장이 일면 수용 가능한 측면이 있지만, 세금으로 배정되는 예산인 만큼 국민 정서에 반하는 사용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외교 명목상 자유롭게 예산처리를 하더라도 사적 유용 등 오남용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명확한 규정과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영준 국방대 교수(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은 “예전의 국정원 공작비, 정부기관 특활비 등에 세금이 쓰이는 문제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적폐청산 시 과거 문제들이 많이 개선이 됐지만, 아직도 남은 과제들이 있다. 여러모로 국민 정서에 반하는 사용인 데다 악용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묵과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어 “업무추진비 사용 금지처에 불가피한 예산 사용이 있어야 한다면 세금 외에 다른 자금을 확보하거나, 사용 관련 증빙과 내용을 명시하는 등의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아직도 일부 국가 중에서는 그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주재국 정부와 교류하기 어려운 곳들이 있기에 주재국 정부와 교류하기 위해 불가피한 사용이 있을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각 대사관에서 사적 사용은 불가능하도록 체계를 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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