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에 달한다. 그 높은 비중을 감안할 때, 비록 쌍발 엔진 중 수출이 힘을 못 쓰더라도 나머지 엔진인 소비가 받쳐주면 그래도 경제는 그럭저럭 굴러갈 수 있다. 실제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대비 0.3%로 이 중에서 민간소비의 기여도가 0.3%포인트다. 즉, 아직 민간소비는 경제 성장을 견인 중이다. 그리고 하반기 경기는 민간소비의 방향성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하반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쪽에 선다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보복소비 심리가 더 이어질 수 있다는 가설이다. 한국은행에서 분기 단위로 발표되는 지표인 민간소비는 나쁘지 않게 나왔다. 그런데 통계청에서 월 단위로 발표하는 지표들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우선 소매판매 증가율은 지난 2월 전월비 5.0%로 크게 늘었지만, 3월에 0.1%, 4월에 -0.3%로 가라앉는 모습이다. 다른 지표인 서비스업 생산증가율은 3월과 4월에 모두 전월대비 감소했다. 분명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구매력의 위축이다. 가계가 실제 소비에 쓸 돈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그런 영향을 미쳤을 요인들은 많다.
기본적으로 소득 여건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 최근 자산시장의 반등이 있기는 하지만 소비로 이어질 정도의 자산 이득은 기대하기 어렵다. 근로소득의 측면에서도 최근 고용 시장이 좋다고 하지만, 5월 고용 동향에서 연령대별로 본다면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1년 전에 비해 37만9000명 증가했으나 60세 미만 취업자는 오히려 2만8000명 감소했다. 그리고 제조업 취업자도 빠르게 감소 중이다. 즉, 현재 고용 시장의 질적 수준은 높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미래의 구매력을 당겨 지금 소비하기도 쉽지 않다. 금리가 너무 높아 할부나 신용을 확대할 여건이 안된다. 오히려 기존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높아져 실질 구매력이 감소하는 것만으로도 가계의 입장에서는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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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결정적인 것은 고물가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동월대비 3.3%로 4월 3.7%보다 낮아졌다. 이는 물가 상승률이 낮아진 것이지, 물가 수준 자체가 낮아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실제 마트에서 장을 보면 카트에 물건을 담기가 겁난다. 최근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많고, 지금 쓸 건 쓰고 잘 먹고 잘 살자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다.
이대로 간다면 하반기 유일한 경제 안전판인 소비가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경제의 모든 엔진은 꺼지게 된다. 만약 정책 담당자들이 하반기 경기를 살리고 싶다면, 아니 최소한 최악의 시나리오인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나오는 역(逆)성장을 보고 싶지 않다면, 소비 부문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보복 소비심리가 계속될 것이라는 희망은 위험하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금리 인하다. 이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이 잘 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절실하다. 다음으로 물가 안정이다. 이는 금리 인하와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미시적 대책이다.
이제 곧 휴가철이다. 지금도 해외여행이 급증하고 있다. 국내 관광 수요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내 관광지 물가가 너무 높다는 기사가 매일 나온다. 가뜩이나 엔저로 일본 여행 비용이나 국내 여행 비용이 큰 차이가 없다면 누가 국내에 머물겠는가. 관광지 물가 안정을 통해 여행 수요를 흡수해야 한다.
또한 이제는 일상이 됐지만, 호우·태풍·폭염 등 기상 이변으로 여름과 가을에 걸쳐 거의 매년 먹거리 물가가 급등한다. 중요한 품목에 대한 수급 대책이 선제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하반기에 소비가 좀 더 버텨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지막 경제 안전판인 소비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