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포괄임금제는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 최대 장애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가 포괄임금제 문제를 해결하는 첫발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포괄임금제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방식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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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임금제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제도다. 대법원이 사용자의 임금 계산상 편의를 용인하는 식의 판결에 따른 관행적으로 존재하는 제도다. 2010년엔 대법원이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 한해 포괄임금제를 허용하면서 활용 범위가 좁아졌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공짜 야근, 야근 갑질의 주범으로 꼽힌다.
2020년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포괄임금제 적용사업체는 조사 대상인 2522곳 중 749곳(29.7%)에 달했다. 사업장 규모별로 상시 근로자 수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30.3%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했고, 10인 이상 100인 미만(29.8%) 사업장도 평균을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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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도입된 포괄임금제 사업장에서는 연장근로 동의 여부와 보상보다 적은 근로시간이 얼마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니 포괄임금제 사업장의 임금체불 수사의 난이도는 극강이다. 증거 자료도 없이 일한 시간보다 적은 보상을 줬다는 증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文정부가 폐지 못한 이유…제조 대기업 근로자엔 ‘이득’
사실 포괄임금제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폐지하려고 시도했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하나로 ‘포괄임금제 폐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2017년 11월 고용부는 ‘포괄임금제 사업장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서 끝내 발표하지 못하고 폐기했다. 고용부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제도에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제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고, 가이드라인을 기준 삼아 악용하는 사례도 만연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포괄임금제를 규제하지 못한 다른 이유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중심에는 대기업 노조가 있다. 일부 제조 대기업에서는 포괄임금제를 통한 수당이 회사가 예상한 연장근로 시간에 미달해도 지급하면서 일종의 당연히 받아야 할 통상임금이 됐기 때문이다. 포괄임금제가 없어지면 일한 시간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았던 근로자의 임금이 줄게 된다. 이로 인한 노사갈등의 악화를 문재인 정부는 우려했던 것이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포괄임금제는 탈법적인 성격이 있음에도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정착된 부분이 있다”며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업종에 한해서만 해야 하는데, 오히려 노사의 단합이나 야합으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며 적용한 사업장 많다”고 설명했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근로자는 고정OT 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공짜로 일하는 것보다는 나은 부분이 있고, 사용자는 근로시간 관리 부담이 줄어드니 윈-윈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고용부가 이러한 사실을 암고 있음에도 강하게 규제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런 맥락”이라고 전했다.
◇주52시간제 최대 장애물 부상…사무직 MZ세대 거센 반발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추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포괄임금제가 주52시간제 유연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의 개편안은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이나 ‘분기’, ‘반기’, ‘연’ 단위로 다양하게 선택하고, 11시간 연속휴식권 보장 시 1주 최대 69시간, 휴식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최대 64시간을 근무할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일이 많을 때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푹 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사업장에서 포괄임금제를 활용하고 있다면, 69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을 하고도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 우려가 커졌다.
특히 노조의 힘이 강해 포괄임금제가 유리하게 작용하던 대기업 제조업 근로자들과는 달리, 노조가 없거나 힘이 약한 중소기업 근로자나 사무직 근로자의 원성이 빗발쳤다. 우리나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는 사무직 근로자가 대부분이라, 근로시간 제도 개펀안에 대한 우려와 정부를 향한 원망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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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윤석열 정부는 포괄임금제 규제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특히 그 첫발로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 법안을 추진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사용자에게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기록하게 하고 일정 기간 보관하도록 의무를 주고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는 방식이다. 의무화를 통해 근로시간이 투명하게 관리되면 포괄임금제를 도입해야 하는 법적인 논리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근로시간 기록관리 의무화는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19년 유럽연합(EU)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EU 회원국이 사용자들에게 각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모두 측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판결했다.
EU는 근로시간 지침으로 근로자의 7일 평균 근로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하면 안 되고, 근로일 간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게시간 보장하는데, 이를 근거로 회원국의 근로자들이 법정 최대 근로시간 규정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판결이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근로시간을 기록하는 제도가 없다면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고, 그렇다면 법이 준수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는 디지털 기기 등을 활용한 근로시간 기록 시스템이 마련됐다.
일본도 사용자가 근로시간을 관리할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근로시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타임카드와 컴퓨터 사용시간 등의 객관적인 기록을 해야 하고, 부득이하게 근로자가 스스로 신고하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경우 신고된 시간이 적정한지 확인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
◇포괄임금 자체 금지해야?…“더 큰 혼란 부를수도”
일각에서는 포괄임금제라는 계약 방식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로시간 기록을 의무화해도 사용자가 출퇴근 시간을 조작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사용자와 근로자와의 갑을 관계에서 사용자의 일탈 행위를 신고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률적인 규제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이미 대법원이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업무에 대해서는 포괄임금제를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데, 그걸 일률적으로 금지한다고 하면 방식이나 내용이 애매해지고 복잡해진다”며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던 것도 전부 무효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단서도 많이 달아야 해 법이 마련되면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가 되면 사용자의 의무를 감시할 수 있는 정부 시스템도 마련될 수 있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고 전했다. 그는 “어떤 제도가 있어도 사용자의 일탈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새로운 의무가 생기면 그걸 감시하고 감독할 수 있는 정부의 시스템도 마련될 수 있고, 이를 통해 구조적 문제가 순차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