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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연성진·안성훈 선임연구위원은 ‘검찰 수사 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원인 및 대책’ 연구보고서에서 검찰 수사 도중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조사자(피의자)는 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를 포함한 ‘화이트칼라’의 비율이 특히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화이트칼라 범죄는 대체로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특성이 있다. 이에 검찰은 피조사자 본인뿐만 아니라 동료·가족 등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조사를 펼치는데, 피조사자는 자신이 겪는 고통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가하지 않으려는 회피·해결·배려 목적의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고 성공한 경험이 많을수록 실패와 좌절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고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정영학 녹취록’ 일부 내용을 살펴보면 김씨는 자신의 사업 수완을 자신하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는다. 유동규 전 본부장은 경기도 공직사회에서 고속 승진가도를 걸어온 이력이 있고, 김문기 전 처장은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남다른 애사심과 자부심이 대장동 수사로 부정당한 것이 괴롭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화이트칼라 범죄는 대체로 사회적 파장력이 크고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탓에 피조사자가 상당한 수치심·불안감을 느끼고, 언론의 과열된 취재 경쟁이 이러한 스트레스를 증폭시킨다고 지적했다. 또한 검찰은 신속히 수사 성과를 내놔야 한다는 중압감 탓에 피조사자의 상태를 배려하지 않은 무리한 수사를 벌일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화이트칼라 범죄는 사회적 파장력이 큰 탓에 정치적 사안으로 번지는 경우가 잦다는 특성도 있다. 이때 피조사자들은 자신이 ‘표적수사’, ‘불공정 수사’, ‘정치적 보복수사’, ‘짜맞추기 수사’를 당한다고 인식할 수 있는데 이것이 상당한 좌절감을 유발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연구 결과로 나왔다.
한편 검찰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김씨의 상태를 고려해 수사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사건의 ‘열쇠’를 쥔 김씨가 재차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보호 차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검찰 관계자는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사과정에 참작해서 진행할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