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만난 연수생들은 조선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조선 기술자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녔던 홍지형(26) 연수생은 “조선 수주가 늘었다는 소식에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운 뒤 일하고 싶어 지원했다”며 “힘들 수 있지만, 기술을 빨리 습득하면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는 만큼 배운 기술을 갈고 닦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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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혜택에도 기술교육원은 올해 연수 목표 인원을 맞추지 못했다. 5차례에 걸쳐 연수생 1000여명을 모집했지만, 연수 인원은 555명으로 아직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기술교육원 측은 청년들이 자주 찾는 축구장과 야구장까지 찾아 홍보했으나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조선업이 활황이던 10여 년 전 연수를 받고자 지원자 간 경쟁을 거치던 시절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임금 적고, 고용 불안 여전’…조선소 찾지 않는 인력들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 수주 호황기를 맞이한 국내 조선업이 인력난에 흔들리고 있다. 중소업체에선 ‘일할 사람이 없어 수주를 포기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수주 물량이 밀려 들어오더라도 이를 감당할 인력이 없으면 생산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조선사들은 인력 구하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조선사들은 다양한 혜택을 앞세워 기술교육원 지원을 홍보하고 있지만, 청년들은 조선업에 발을 들이길 꺼린다.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으론 노동 강도 대비 적은 임금구조가 꼽힌다. 수년간에 걸친 장기불황에 조선업계의 임금 인상이 정체된 데 비해 최근 몇 년 사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조선업 일자리가 경쟁력을 잃었다는 얘기다.
홍 연수생은 “주변 지인들에게 함께 조선소에서 일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조선소 업무가 거친 데 반해 임금이 적다는 인식 때문에 거절을 당했다”며 “굳이 타지 생활을 하면서까지 조선소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 많고, 택배기사 일을 해도 조선소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수십년 간 조선업에서 일해왔던 숙련공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달 열린 국회 토론회에선 한 조선소 협력업체 직원의 명목임금이 10년 넘게 200만원 초반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올해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한 월급(209시간 기준)이 190만원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숙련공들이 조선업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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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과거 조선업에 종사하던 근로자 상당수는 현재 건설업이나 육상플랜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며 “비교적 안전하고 임금도 높은 데다 생산 물량이 끊겨 해고당할 일이 없으니 어느 숙련공이 조선업으로 돌아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조선업 숙련공 복귀를 위해선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등 근로 조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업을 대하는 구직자 인식이 달라지고 있어 인력난이 고착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술교육원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이도원 대리는 “저도 15년 전 기술교육원에서 처음 기술을 배웠지만, 그땐 조선소 기술자란 직업의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며 “기술을 익히는 데서 오는 성취감도 있는데, 요즘엔 조선업이 ‘힘든 일’이라는 데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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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조선소 간 인력 유출을 두고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제소한 사건은 인력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조선사 간 인력 문제로 공정위에 제소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선 새로운 인력이 들어오고, 기존 숙련공들이 복귀해야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력난 해결을 위해 조선업계의 수익성을 높이는 동시에 단기적으로는 유연한 주 52시간제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현재 조선업의 생산 인력난은 시급한 상황으로, 생산인력 부족은 내년부터 심각한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적으로는 주 52시간제의 유연한 적용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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