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미국 CNN비즈니스의 폴 R. 라 모니카 칼럼니스트는 내놓은 제안이다. 오는 11월3일 미국의 대통령직을 놓고 맞붙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2022년 2월까지 임기인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사진) 의장에게 4년 연임을 보장하라는 얘기다. 아직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성급한 요구이긴 하지만 파월 의장의 치솟은 몸값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연준이 코로나19발(發) 충격에 맞서 잇달아 내놓은 선제적이고 파격적인 조치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경제대통령 위상 확인한 파월
미국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화풀이 대상 정도로 취급받던 파월 의장의 위상은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프랑스계 글로벌은행 소시에테 제네랄의 키트 주크 외환 리서치 헤드는 “이번 위기에 대응하는 파월의 반격에 우리는 찬사를 보내야 한다”고 했고, 24에셋 매니지먼트의 데이비드 노리스 미 신용부문 대표는 “연준의 탄약은 풍부하다는 중요한 시그널을 시장에 보낸 파월의 조치는 획기적이었다”고 했다. 평소 파월 의장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던 짐 크래머 CNBC 앵커조차 “파월은 진짜 남자” “연준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등의 표현으로 칭송할 정도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가 통제 불능일 수 있다는 우려로 시장의 불안이 커지자, 전광석화처럼 전면에 나섰다.
지난달 1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틀 뒤인 일요일에 선언한 전격적인 ‘제로금리’ 채택과 양적완화(QE) 재개, 다시 나흘 뒤 내놓은 9개국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 체결 등이 대표적이다. 매주 ‘실업 쓰나미’가 몰아칠 때마다 ‘회사채 매입’, ‘정크본드(투기등급 회사채) 매입’ 등 한 단계씩 강도 높은 카드로 맞서며 공포에 짓눌린 시장을 다독였다.
파월 의장은 9일 정크본드 매입을 골자로 한 최대 2조3000억달러(2800조원)의 유동성 추가 투입 발표 후 가진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경기회복 경로에 올라섰다고 확신할 때까지 강하고 선제적이면서도 공격적으로 우리의 권한을 계속 사용하겠다”며 향후 강력한 부양 조치를 이어갈 것임을 시사해 시장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또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반등은 매우 ‘강할’ 것”이라며 ‘V자 회복론’에 힘을 실었다. 이와 관련, 크래머는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연준(파월 의장)과 선출된 지도자(트럼프 대통령)는 한 편”이라고 논평했다.
|
평소 툭하면 불만을 토로하고 비난을 퍼붓던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나 발언에서도 더는 ‘제롬 파월’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건 지난달 23일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의 백악관 브리핑이 마지막이다. 그는 당시 “나는 그(파월 의장)가 있는 게 기쁘다”며 “나는 파월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로 잘했다’고 했다”고 말한 게 마지막이다. 아직 그 평가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여전히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미국의 경제 재개 시기와 관련, “잘못된 출발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이 ‘5월 경제 재개’에 군불을 때고 있는 가운데 나온 언급이다.
이를 두고 미 의회전문매체 더 힐은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측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 가이드라인을 섣불리 완화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금까지 연준의 조치는 시장안정과 향후 강한 ‘경기반등’을 이끌기 위한 중앙은행으로서 역할에 충실했을 뿐 트럼프 대통령의 ‘꼭두각시’가 된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시장 일부에선 파월 의장의 행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위기 때마다 중앙은행이 ‘구원자’로 시장에 개입하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정크본드 매입 등 한계기업들까지 중앙은행이 나서 구제한 건 구조조정 기회를 차단함으로써 되레 경기반등의 걸림돌을 양산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어느 순간 쏟아부은 달러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이 생길 것”이라며 “달러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정부·기업·가계 모두 향후 엄청난 빚에 시달릴 것이라는 점”이라고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