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거도 안 태워줘"…亞까지 번진 `코리안 포비아`

김보겸 기자I 2020.03.19 01:11:00

한때 ''코로나19 안전지대'' 인도서도 혐한 거세져
버스에서 수십명 둘러싸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
예약해 둔 호스텔에서도 "한국인이라 예약 취소"
강경화 "동양인 향한 언어·물리적 폭력 지양해야"

[이데일리 하상렬 김보겸 기자] “릭샤(인력거)를 타려고 하는데 아저씨가 저를 보더니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가 버리더라고요.”

3년 전 인도로 유학 간 한국인 고등학생 A군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싸늘해진 게 못내 불쾌하다. 등굣길에 릭샤를 타려고 하는데 승차 거부를 당하는 일이 잦기 때문. A군은 “기사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 탑승을 거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뭄바이에서 대학을 다니는 한모(27)씨도 “학교 가는 길에 기차에 타면 한국 학생들을 향해 수군거리고 앞에 앉아 있다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버린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인종 차별 행위도 확산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아시안 포비아(동양인 공포증)`가 기승을 부렸다면 이제는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셈이다. 특히 확진자수가 많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을 향한 차별행위도 늘어나는 추세다.

두 달째 인도를 여행 중인 B(29)씨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숙박업체에서 거절당한 뒤 현지 지인 집에서 머무르고 있는 모습(사진=B씨 제공)


◇인도서 첫 사망자 나오자…버스에서 악몽의 6시간

인도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의 제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코로나19 확진자 취급하며 위협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 안전지대`로 불렸던 인도에서 이달 들어 확진자 증가세가 가팔라졌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표된 이후 18일 기준 총 3명이 사망했다. 확진자는 142명이다.

1월 중순부터 인도 여행을 하고 있는 B(29)씨는 현지 사람들에게 위협과 차별을 받고 있다. 12일 저녁 알리바그에서 푸네로 향하는 버스에서 보낸 6시간은 B씨에게 악몽이었다. B씨는 “버스에 탑승하고 승차권을 확인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출발하자마자 승객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와서 `코로나 바이러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Corona virus, go back to your country)`며 협박했다”며 “인도에 온 건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이라고 설명했지만 푸네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위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도에서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표된 날이라 이해는 가지만 폐쇄 공간에서 계속 협박을 받으니 두려웠다”고 덧붙였다.

B씨가 인도 푸네에 도착해 머무르려고 예약해 둔 숙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숙박이 취소됐다. (사진=B씨 제공)


◇예약한 숙소 거부에 돌아가는 비행기도 없어 발만 동동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숙소에 짐을 풀 수 없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예약이 취소된 것. B씨는 “체크인하기 위해 숙소에 전화를 했더니 한국인은 안 받는다더라”며 “이미 예약할 때 국적 등록도 했는데 어이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B씨는 인도 사람인 지인 집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지인의 조언대로 이웃에게는 네팔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면서 “네팔 사람이 한국인들이랑 생김새가 그나마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넌더리가 나서 바로 집으로 가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한국행 직항 비행기가 4월 말까지 운행 중단된 탓이다. 태국이나 싱가포르로 경유해서 오는 방법이 있지만, 이 국가들 모두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 뭄바이 지자체에서 호텔과 관광지 등에 보낸 공문.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중국과 한국 등을 방문한 여행객이 있을 경우 신고하라고 명시한다. (사진=독자 제공)


인도 정부는 식당과 숙소에 예방 공문을 보내 외국인 방문 시 정부에 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뭄바이 지자체가 한 호텔에 보낸 공문을 보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중국이나 한국을 방문한 적 있는 여행객 정보를 알리는 것이 식당과 숙박업소의 의무”라고 적혀 있다.

뭄바이에서 20년간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황선원씨는 “아침에 시장에 갔더니 주위 사람들이 `코로나`라고 하면서 도망을 쳐 깜짝 놀랐다”며 “엘리베이터에서도 사람들이 나를 피한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또 “인도 사람들은 군중심리가 아주 강한 편이라 무슨 일이 발생하면 집단적으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한국을 중국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전염병은 인종 안 가리는데…코로나19 핑계 댄 혐오범죄 잇따라

서구권에서는 동양인 혐오가 실제 우리 국민에 대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캐나다 몬트리올 총영사관은 40대 한국 남성이 길을 가다 괴한의 칼에 피습당했다고 밝혔다. 범행 동기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종 혐오 범죄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한국 유학생이 흑인 여성에게 폭행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외신에 따르면 12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23세 한국 여성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흑인 여성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 당시 흑인 여성은 “넌 코로나 바이러스야”라며 욕설을 퍼부었고 주변에 있던 수십명의 사람들도 비하 발언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 인종 차별을 지양해 달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15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영국 BBC에 출연, 인종 차별이 코로나19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강 장관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이 언어·신체 폭력을 많이 당하고 있다”며 “증거와 과학에 의해 판단해야 할 각국 정부는 책임감을 갖고 전 세계의 화합을 방해하는 폭력을 제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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