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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유치원 비리 근절···사회적 감시망 갖춰야

최은영 기자I 2018.10.16 05:00:00

美 학교 아동발달 관찰 과제, 영유아 기관 감시·개선 효과
年 2조 혈세 쏟는 사립유치원··회계시스템과 더불어 감시 수단 구축을

[강선우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10여 년 전 미국에서 아동발달수업(Childhood Development) 조교 일을 몇 해에 걸쳐 했다. 200~3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수업이었다.

학생들이 매주 제출하는 과제를 채점하고 적절한 조언을 하는 게 조교의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수백 장의 주간 과제물을 읽고, 그에 따른 맞춤형 피드백을 주는 과정에서 이른바 ‘복붙(복사 후 붙
여 넣기, Ctrl C + Ctrl V)의 유혹도 컸다. 하지만 등록금 면제, 주(州)정부 공무원에 준하는 의료보험 혜택, 유학생 살림살이에 소소하게 보탤 월급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 잡곤 했다.

조교의 또 다른 주요 업무는 학생들의 학기말 리포트 도우미였다. 학생들에게 부여된 과제는 주로 수업 시간에 배운 ‘아동발달 이론’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직접 방문해 눈으로 관찰하고 대입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조교는 지역 어린이집, 유치원과 학생들의 방문 여부 및 스케줄을 조율하고 체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미국 중소도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 방문객을 아이들이 방해 받지 않을 정도로 제한했다. 규모가 제한되다 보니 자연스레 횟수가 늘어났다. 결국 그 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수 백 명의 관찰 과제로 인해 사실상 한 학기 내내 ‘감시 받으며’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의 관찰과제를 통해 학생들이 얻은 것은 단순히 이론을 대입하는 것 이상이었다. 교육과제, 점심, 간식 메뉴 등의 기본 정보는 물론, 그곳에서 일하는 선생님들과의 교류는 덤이었다. 심지어 몇몇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개선을 위한 제안 등을 역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다. 이건 내가 잠시 급여 등의 혜택을 받았던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럼, 내 나라는?

지난 5일 국회에서 ‘유치원 비리근절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아니, 열릴 뻔 했다는 게 좀 더 적확한 표현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원장 300여명의 고함과 야유, 단상 점거 등으로 인해 토론회가 중단 됐다.

지난 11일에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감사를 통해 비리 혐의가 적발된 유치원들의 명단과 그 비리 내용이 일부 공개됐다. 공개 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교육지원비 등으로 사용됐어야 할 이 돈이 홍어회, 막걸리, 명품 핸드백, 아들의 대학 입학금, 연기 학원비, 외제 자동차 보험료, 노래방, 숙박업소, 성인용품 등에 쓰였다고 한다.

매년 2조원이 넘는 돈이 정부 누리과정예산으로 사립유치원에 지원되고 있다. 이는 전부 우리가 낸 세금에서 비롯된다. 우리 세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그 목록을 살펴보니, 아이들에게 쓰여야 할 예산이 오용·악용됐던 것이다.

사립유치원의 책무와 회계 투명성을 높여 줄 국가 차원의 회계관리시스템 구축을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유치원의 예산·결산 관리와 수입·지출 관리 등을 위한 회계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은 어제 오늘 제기된 게 아니다. 지난 수년간 문제점 지적과 함께 국가시책사업의 구체적인 움직임도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계속 중단되고 좌절됐다.

대인관계에서 사회적인 적응능력을 키우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는 시기다. 이 시기 지능과 언어능력이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발달하며, 식사·수면·신변처리·옷 입기·청결 등 인생의 기본적 습관이 형성 돼 자리 잡는다.

이 시기의 교육은 어찌 보면, 우리 삶에 대입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관심에서 시작된 다양한 ‘감시의 눈’이 입법으로, 제도로, 또 문화로 자리 잡아야 마땅한 이유다.

물의 끓는점과 얼음점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정점을 찍고 있는 지금, 사립유치원 회계관리시스템과 다양한 ‘감시의 눈’이 제도적으로 구축되고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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