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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면 하나씩 생길 정도로 급성장 중인 P2P(Peer to Peer) 플랫폼 시장.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이 업계의 선두주자인 ‘8퍼센트’의 이효진(33) 대표를 최근 서울 사당동 본사에서 만났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질끈 묶은 머리. 갓난 아이를 둔 엄마인 그의 대학생 같은 첫 인상은 과학고, 포항공대 출신이란 이력을 짐작케 했다. 이제 막 돌이 된 딸 아이는 그의 첫 아이와 다름없는 8퍼센트 보다도 어리다. 처음 8퍼센트 창업 당시 그는 홀몸이 아니었다. 배가 남산만하게 나온 임산부가 대부업 대표로 불리며 금융위원회로 불려 갔고,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도 신입직원 면접을 봤다. 출산 한 달 반만에 출근한 이 대표는 “아이가 너무 예뻐 눈에 아른거린다”면서도 “은행에서의 8년 보다 지난 1년이 더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며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회상했다.
과연 무엇이 그녀를 여성 희소지역인 한국 벤처업계에서 국내 P2P 시장을 이끄는 잔다르크로 만들었을까.
◇“벤처 창업의 목적은 돈이 아닌 꿈”
‘까톡, 까톡’
모두 합쳐 16명인 8퍼센트 직원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은 24시간 쉴새 없이 울린다. 이 대표는 “새벽 3시에 잠이 깨 일어나 카톡방을 보면 미확인 메시지가 수백개”라며 “다 읽고 답을 하다보면 날이 밝는다”고 말했다.
8퍼센트 직원들은 모두 순수 국내파 출신이다. 외국 물 좀 먹은 해외파 출신이 없다. 하지만 다양한 직무 경험과 배경의 직원들이 모여 오롯이 하나의 비전에 집중한다.
“우리는 점점 고착화 돼 가는 대한민국 사회의 계층 사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막중한 사명감을 느낌니다.”
8퍼센트 이용 고객의 상당수가 고금리 대부업체 이용자다.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에서 연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쓰던 사람들이 8퍼센트에서 대환대출을 받으면 절반 이하로 금리가 절감된다.
인간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소유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소유형 인간과 자신의 존재 가치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형 인간. 이 대표는 전형적인 존재형 인간에 속하는 것 같다. 그는 “벤처를 창업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돈이 아닌 꿈”이라며 “우리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존재 가치에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P2P 대출 리스크, ELS보다 낮다
하지만 그가 처음 입행 때부터 벤처 창업을 꿈 꿨던 것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같은 은행에서 본부장으로 퇴임 했기에 “조직에서 끝장을 봐야겠다”고 마음을 다 잡았다.
은행에 다닐 땐 직장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본점에만 6년을 근무했고, 리스크 관리의 핵심인 ELS(주가연계증권) 운용을 맡았다. ELS 운용역은 고객의 투자금으로 변동성이 큰 파생금융 상품에 투자해 약속된 수익률은 물론 은행의 수익도 가져다 줘야 한다.
금융상품 리스크 전문가인 이 대표는 “ELS 운용을 해 봤기에 감히 장담할 수 있다”며 “P2P 대출의 리스크가 ELS 보다 훨씬 더 낮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에는 특화된 능력이 있지만, 개인신용대출에 대한 심사능력에는 전문성이 있는 것 같지 않다”며 “우리는 은행권보다도 리스크 관리를 잘 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실제 8퍼센트는 지난 1년 동안 698명의 대출자중 3명의 연체자만 발생했을 뿐이다.
◇남편·가족의 도움 있어 워킹맘 가능
이 대표가 밤낮없이 일에 몰두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가족과 남편의 도움 덕분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남편은 창업 초기 그의 아이디어를 구체화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대표가 생각한 8퍼센트의 개념을 직접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것이다. 지금은 능력이 있는 프로그래머가 5명이나 되지만 그때만해도 이 대표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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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퍼센트의 목표는 대출액 10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이다. 지난 1월말 기준 대출 잔액은 100억원 정도. 올 한 해 10배 성장이 목표다. 이 대표는 “해외의 사례를 보면 시장 발전의 로드맵을 알 수 있다”며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되는 올해는 제도적 정비가 돼야 중국의 그림자 금융처럼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효진 대표 프로필>
△1983년 서울 출생. 한성 과학고와 포항공과대학 수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우리은행 입사 후 기업금융, 파생상품 트레이딩, 퀀트 등을 담당했다. 2014년 4월 은행을 그만두고 8퍼센트를 창업했다. 아버지는 이익기 전 우리카드 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