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사설] 거북걸음으론 이란 시장 뚫지 못한다

논설 위원I 2016.01.29 03:49:49
최근 미국 등 서구 진영으로부터 37년간에 걸친 경제 제재에서 벗어난 이란을 공략하기 위한 우리 정부가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그동안 이란이 국제시회의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국내 은행 계좌에 동결돼 있던 석유수출 대금을 본국으로 들여가겠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이다.

문제의 계좌는 2010년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개설한 이란 중앙은행의 원화 계좌로 그동안 국내기업의 이란 수출입 대금 정산에 써 왔다. 무려 4조원대 규모로 추산되는 이 원화계좌 잔액은 국내 기업들이 이란과 교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우리 정부가 계좌를 유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란은 아직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이란발(發) 경제특수를 기대하기보다 ‘발등의 불’부터 먼저 꺼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우리 기업들의 대(對)이란 교역액은 2011년 174억달러에서 지난해는 61억달러로 주저앉았다. 경제제재 상황에서 불가피한 결과였다. 금융거래가 엄격히 제한된 상황에서 그나마 이란과의 교역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원화 계좌 덕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양국 협력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셈이다. 그 연결선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란은 인구 7000만명에 원유 생산량 세계 4위인 자원부국이다. 거대한 내수시장과 원유 등 부존자원을 노리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경제제재 해제 이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이란 땅을 밟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이란 방문을 조율 중이다. 주변국이 중동 최대시장으로 등장한 이란을 공략하기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는 거북걸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방문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은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대표로 하는 민관 경제사절단 파견 계획에서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이란시장 개방을 기회로 삼아 경제 활로를 뚫으려면 정상급 외교를 성사시키는 것이 먼저다. 내수부진과 글로벌 경제위기에 직면한 국내 철강·건설·전자·자동차 업계에 이란시장이 단비가 되기를 기대한다.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모처럼 다가온 기회를 우물쭈물 놓쳐서는 안 된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