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공약은 유권자를 위한 선물이 아니다. 혈세를 통해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제안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약은 공적계약으로 불린다. 선거는 후보가 공약을 통해 대의를 위임받는 절차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당연시되고 있다. 이번 4·29 재보선은 어떨까. 이데일리가 각 후보들의 공약 실상을 점검해봤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김정남 강신우 기자] 이번 4·29 재보선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대부분 수천억원대 대형사업을 공약했다. 조 단위를 넘는 공약도 있다. 이것이 그렇게 이례적인 건 아니다. 모든 선거에서는 이같은 선심성 공약이 난무해왔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은 임기가 불과 1년 남짓이라는 점에서 유권자로부터 의구심을 더 사는 측면이 있다. 임기 1년짜리 재보선 후보들이 대선주자급 공약을 내세운다는 비판이다.
서울 관악을에 나선 오신환 새누리당·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유일하게 재원조달방안을 명시한 것은 경전철 사업이다. 규모는 수천억원 단위다. 오 후보는 경전철 난곡선 노선의 국토교통부 조기 승인 및 착공에 시비 1487억원, 국비 469억원, 민자 1956억원을 각각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024년까지다. 정 후보는 난곡선 노선과 신림선 노선을 조기 착공하는데 각각 3912억원, 8329억원씩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같은 천문학적인 금액이 드는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국회 한 관계자는 “전례를 볼 때 1년 임기의 국회의원이 이렇게 몸집 큰 국책사업을 실현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구 역시 마찬가지다. 인천 서·강화을에 나선 안상수 새누리당 후보는 강화~영종 연도교 외에 각종 도로 5곳, 각종 다리 2곳 등 개발 계획을 무더기로 약속했다. 조 단위의 예산은 거뜬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 신동근 새정치연합 후보 역시 강화~영종 연륙교 착공에 6400억원(2016~2025년)이 들 것이라고 했다.
성남중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위례~성남~광주 지하철 추진)와 정환석 새정치연합 후보(광주~도촌~여수~시청~모란~수서 지하철 신설, 위례~은행동~을지대~신구대~공단~광주 지하철 신설) 등 지하철 신설 추진을 각각 공약했다.
정승 새누리당 후보(서창 마륵 문화예술관광단지 조성, 광주~완도 고속도로 매월 인터체인지(IC) 조기 착공)와 조영택 새정치연합 후보(광주 군 공항 이전 추진), 천정배 무소속 후보(자동차산업 융합캠퍼스 및 창업보육센터 설립, 김대중인권평화대학원 대학교 설립) 등 광주 서을도 수천억원대 공약들이 즐비했다.
관악을에 출마한 정동영 무소속 후보는 대선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담론을 대거 공약해 눈길을 끌었다. 정 후보는 대형사업은 약속하지 않았지만 △사회복지세 도입 △재벌개혁 △노동 3대 악법(비정규직법·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 전면 개정 등을 내세웠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소 박하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는 “(초대형 사업 공약은) 무리”라면서 “유권자들이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했고,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후보들이 재보선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총선, 나아가 대선에 마음이 가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김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는 정동영식 거대담론 공약을 두고 “국회의원은 지역와 국가을 모두 대표하는 만큼 그 역할이 이중적”이라면서 “후보가 속한 정당의 방향도 중요하기 때문에 거창한 공약들이 포함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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