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뿐이 아니다. “그녀는 도시로 온 꽃뱀, 날 등쳐먹었지”(‘골드 디거’ 중)라고 외친 카니예 웨스트를 비롯해 닥터드레 등 상당수 래퍼의 앨범에는 여성이 잠자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성적 대상으로 묘사되거나 무능한 존재로 그려졌다.
지독한 남성 우월주의다. 이 고약한 문화는 어디서 왔을까. 래퍼들은 원래 거칠어서? 너무 단편적인 접근이다. 사회를 들여다봐야 한다. 여성 비하는 미국의 뿌리 깊은 문화다. 백인남성이 주도해 온 미국역사 속에서 특히 흑인여성은 비참하게 억압당했다. 백인여성에 비해 낮은 취급을 받았고,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도 어려웠다.
‘람보’ ‘터미네이터’ ‘대부’ 등 숱한 할리우드 영화가 이를 증명하는 ‘거울’이다. 흑인여성은 뚱뚱하고 성적 매력이 없는 가정부(마미)로 그려지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잠자리도 가리지 않는 요부(재즈벨)로 나왔다. 이런 미국 사회·문화적 토양 속에 힙합의 여성 비하 문화도 태어났다는 것이다.
여기에 힙합의 음악적 특성은 래퍼들의 남성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힙합에서는 남자답게 행동할수록 인정받고 그렇지 않으면 놀림 받는다. 여자를 하찮게 다루고 폭력을 행사할수록 순도 높은 갱스터 음악으로 인정받아 온 게 대표적이다.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흑인여성 래퍼들은 왜 남성 래퍼들의 여성비하 문화에 격하게 저항하지 않았을까. 같이 핍박받았던 소수민족으로서 연대감을 무시할 수 없다. 흑인여성 래퍼가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 래퍼에 문제를 제기하면 백인들의 공격을 받지 않을까란 걱정에서 묵인해버린 것이다. 이처럼 책은 힙합음악의 특징을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한다.
대중음악평론가이자 힙합평론가인 저자는 ‘게토’ ‘자수성가’ 등 힙합을 상징하는 15개 키워드를 정해 정치적인 맥락까지 아우르며 풍성하게 풀었다. 앨범 리뷰만 싣는 식의 일반 음악서와 달리 힙합문화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한 게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