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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힐링’이 소설을, 또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정치까지 눌렀다. 2012년은 자기치유를 앞세운 에세이의 강세가 두드러진 한 해였다. 이 추세는 2013년에 들어서서도 한동안 이어질 거란 점에서 위력이 적잖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일찌감치 끊은 출발점은 ‘자기치유를 권하는 에세이’ 서적의 붐을 일으키며, 힐링이 단지 출판만의 주제어가 아닌 올 한 해 한국사회를 변화시켜온 시대적인 감성임을 입증했다.
전통적으로 출판의 베스트셀러를 이끌어온 것은 소설이다. 하지만 올해는 대형서점들이 집계한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에 제목조차 못 걸면서 ‘최악의 성적’(교보문고 전년대비 -1.7%)을 받았다. 그나마 소설은 올 한 해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 전자책의 콘텐츠로선 각광을 받았다. 여전히 가벼운 읽을거리가 주류인 전자출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출판계에서 전자출판은 여전히 덥석 삼키기도 뱉어버리기도 어려운 딜레마다. 디지털 추세에는 따르는 것이 정석이겠으나 종이책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판매율 탓에 콘텐츠 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2012년 출판동향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키워드는 힐링·치유, 형식은 에세이, 뜨거운 감자는 전자출판’이다.
▲ 혜민·정목·법륜…스님들 큰 활약
2010년의 키워드가 ‘정의’였다면 2011년은 ‘청춘’이었다. 2010년에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40대 이상 성인을 책방으로 불러들이며 신드롬을 일으켰고, 2011년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제대로 주역인 적이 없던 청춘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감과 위로의 멘토링을 확산시켰다. 그리고 2012년, ‘힐링’이 그 자리를 채웠다.
힐링의 대표주자는 혜민스님. 지난 1월 출간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26주 동안 1위(예스24)를 기록하며 명실공히 2012년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올해 초 혜민스님이 끊은 성공은 1년 내내 힐링서적의 출간을 부추겼다. 특히 올 한 해는 스님들의 에세이가 큰 활약을 했다. 정목스님의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법륜스님의 ‘방황해도 괜찮아’ 등이 높은 인기를 끌었다.
▲ ‘잔잔히 타이르듯’…멘토 에세이 초강세
‘힐링’의 성격이 그대로 대변해주듯 형식은 에세이가 우세했다.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재학 중 출가해 한국인 승려 최초로 미 햄프셔대 교수가 된 혜민스님은 ‘세상이 바쁜 것은 내 마음이 바쁘기 때문’이란 지극히 단순한 명제로 자기치유를 권한다. 문제는 나 자신이며 거기서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목·법륜스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바꾸는 것보다는 수용하고 이해하라는 논지를 설파한다. 최대한 종교색을 배제한 이들 에세이의 강점은 편안함. 녹록치 않은 사회상황과 맞물리면서 암울한 사회를 치유하는 지침서 역할을 했다.
에세이 열풍의 한가운데는 김난도 교수도 있었다. 김 교수가 낸 두 번째 에세이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가 교보문고와 예스24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각각 6, 7위를 기록하며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뒤를 이었다. 후반기에 등장해 출판계를 강력하게 뒤흔든 에세이는 ‘안철수의 생각’. 단기간에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리는 진기록을 세운 뒤 교보문고와 예스24 올해 순위서 동시에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 전자책 부문엔 ‘은교’ 등 소설 인기
2012년은 전자책의 약진이 돋보이는 한 해이기도 했다. 예스24의 전자책 판매는 전년대비 184%의 성장세를 보였다. 이 가파른 수치엔 자체적으로 개발한 전자책 단말기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전자책 부문 베스트셀러를 이끈 건 단연 소설이다.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E L 제임스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 중 5권이 10위권 안에 제목을 올렸다. ‘그레이…’는 출간된 직후인 지난 8월엔 종이책을 넘어서는 판매량까지 보였다.
교보문고도 전자책 판매율을 전년대비 38.6%로까지 끌어올렸다. 역시 소설분야가 절반을 넘는 59.8%를 차지했다. 교보문고를 통해 가장 많이 팔린 전자책은 박범신의 ‘은교’. 이밖에 양찬순의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윤선현의 ‘하루 15분 정리의 힘’ 등이 상위권에 들었다.
성장세의 전자출판은 새로운 과제도 남겼다. 단순한 읽을거리에서 벗어나 전자책만을 위한 콘텐츠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 이제까진 종이책과 동시출판하는 전자책으로 역할을 한정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출판계로선 여전히 고민이 깊다. 디지털 트렌드를 읽자면 제대로 내놓는 것이 당연한데 비용 대비 수익이 여전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