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즉위 40주년 건립…근대국가 면모 보여줘
1920년대 일제가 철거…30년대엔 유원지로
문화재청 발굴조사…지난해 재건 공사 마무리
전시실·도서 자료실·행사 공간 등 갖춰
우리 ‘문화재’에는 민족의 역사와 뿌리가 담겨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수천, 수백년을 이어져 내려온 문화재는 우리 후손들이 잘 가꾸고 보존해 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죠. 문화재는 어렵고 고루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재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쉽고 친근하게 배울 수 있는 문화재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대한제국의 외교 공간이었던 덕수궁 돈덕전이 100년 만에 되살아났어요. 대한제국 외교의 중심 공간이었던 역사적 의미를 살리면서도 내부 공간을 전시실과 도서 자료실, 문화 행사 공간으로 꾸며 활용도를 높였는데요. 지난달 말부터 정식으로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죠. 돈덕전은 덕수궁의 또 다른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 뒤편에 있는 건물이에요.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행사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된 역사적인 건물인데요. 하지만 훼철된 후 아동유원지로 쓰인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해요. 돈덕전을 다시 만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옛 돈덕전의 모습(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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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덕전은 고종이 1902년~1903년 즉위 40주년 칭경예식에 맞춰 서양식 영빈관으로 지었어요. 서양열강과 대등한 근대국가로서의 면모와 주권 수호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돈덕(惇德)’은 “덕 있는 이를 도탑게 해 어진 이를 믿는다”라는 의미로 중국 고대 문헌 ‘서경’의 ‘순전’에서 유래했어요. ‘덕이 있는 자’는 교류하며 신뢰를 쌓아가야 할 여러 국가를 가리키는데요. 이들을 후대하던 장소가 바로 돈덕전이었죠.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세워졌고 1층에는 알현실, 2층에는 침실이 자리했어요. 황제는 이곳에서 외교사절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며 외국 국빈의 숙소로 사용했습니다.
돈덕전의 수난사는 일제 시대때 시작됐어요. 이 역사적인 건물은 1920년대 일제가 철거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죠. 1933년에는 그 자리에 어린이 유원지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1945년 후에는 덕수궁관리소 등의 용도로 가건물이 지어졌다가 발굴조사와 복원 작업을 위해 철거되기도 했습니다.
| 100년 만에 재건된 돈덕전의 모습(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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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2015년부터 다양한 고증자료를 수집해 2016~2017년 발굴조사를 진행했어요. 2019년 시작한 재건 공사를 지난해 12월 마치고 마침내 문을 열었죠. 다시 돌아온 돈덕전의 외관은 붉은 벽돌과 푸른 창틀로 화려하게 변신했어요. 발굴·사진자료를 토대로 청록색 오얏꽃 벽돌 문양 등 최대한 옛 모습을 반영해 복원해냈습니다. 오얏꽃 문양은 대한제국의 국장이에요.
상설전시실I과 기획전시실로 구성된 1층에서는 고종의 칭경예식 등 당시 대한제국을 담은 영상을 만나볼 수 있어요. 한국 근대외교를 주제로 꾸며진 2층 상설전시실Ⅱ에는 외교의 중요한 사건들과 함께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내부대신 민영환, 조선말 외교관 민영찬 등 자주 외교를 지키려 노력했던 주요 인물들을 디지털 액자로 소개하고 있죠. 아카이브실에서는 각종 도서와 영상자료 열람, 학술회의, 소규모 공연이 가능해요.
| 돈덕전 내부의 상설전시실(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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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유물로는 ‘서울 진관사 태극기’(보물)를 볼 수 있는데요.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먹으로 덧칠해 그려넣은 태극기로 항일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왼쪽 윗부분은 끝자락이 불에 타 손상됐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 혹은 이후 현장에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9월 26일 개관 당시에는 진품이 전시돼 있었지만, 현재 진품은 진관사로 돌아갔고 모조품이 전시돼 있다고 하네요.
| 덕수궁 돈덕전에 전시된 ‘진관사 태극기’(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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