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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대체되기 싫었다”…할리우드 파업 148일이 남긴 것

김영은 기자I 2023.09.29 08:00:23

“AI 복제·재가공 이후에도 지적재산권 보호 대안 필요”
지난 7월부터 배우·방송인은 “디지털초상권 침해 우려”
제작사 “트레이닝차 원본 활용시 작가 권리 보장 예정”
챗GPT 소송 사례…트레이닝 VS 권리침해 논쟁 불붙여

[이데일리 김영은 기자] “저는 인공지능(AI)에 대체되고 싶지 않습니다.”(I don’t want to be replaced with something artificial.)

할리우드 작가조합(WGA)과 배우·방송인조합(SAG-AFTRA)이 지난 8월 22일 미국 뉴욕에 있는 제작사 HBO 사무실 앞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사진=AFP)


지난 5월 초 할리우드작가조합(WGA)을 따라 ‘할리우드 셧다운’(파업)에 동참하게 된 시나리오 작가 미셸 아모르는 BBC에 이 같이 말했다. 미셸은 35년 동안 포장 업자로 일했던 그녀의 어머니가 최근 로봇 포장기기에 밀려 일자리를 잃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노동 집약적인 직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지만 우리는 예술을 창조한다…누가 ‘가짜 피카소’를 진정 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 “AI가 재가공한 작가 콘텐츠”…지적재산권·생계 문제도 초래

아모르와 같은 작가들 1만 1500명이 모여 이뤄진 노동조합 WGA는 지난 5월 2일 △스트리밍 사업에 따른 제작사 수익의 투명한 공개 △공정한 수익 분배 △작업 최소 인력 배치 △AI 도입과 관련한 작가 권리 보장 등을 내세우며 파업에 돌입했다.

급여 수준·근무 조건 개선을 이유로 벌어진 기존 파업과 다른 점은 ‘AI로부터의 권리 보장’이라는 항목이다. 같은달 1일 발표된 WGA의 요구사항에는 “AI는 문학적 자료를 쓰거나 다시 쓸 수 없으며 ‘원본’(source material)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담겼다. 챗GPT(오픈AI에서 개발한 생성형 AI) 등 AI가 작가의 기존 창작물을 재조합해 대본을 작성한다면 작가들의 지적재산권 및 생계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동료 시나리오 작가 멜리사 런들은 “챗GPT가 갑자기 파업에 등장한 것 같아서 놀랐지만 이 문제는 앞으로도 우릴 혼란스럽게 할 거 같다”며 “AI 열풍에서도 작가의 착취를 막는 기본적인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7월 WGA를 따라 동반 파업을 시작한 배우·방송인조합(SAG-AFTRA) 역시 AI에 의해 복제·재가공으로 작품에서 초상권을 주장할 수 없거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16만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던컨 크랩트리 아일랜드 SAG-AFTRA의 수석 협상가는 기자회견을 통해 “스튜디오의 인공지능이 배역이 배우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금 인상 △스크린 내 AI 사용 제한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이들은 AI가 고도화되면서 딥페이크 기술 등을 활용해 배우의 디지털 초상권을 보호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우려한다.

이에 지난달 11일 넷플릭스, 월트디즈니 등 메이저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영화·TV제작자연맹(AMPTP)은 ‘AI 영향력 증가에 따른 보호 제안’을 통해 △회사가 작가에 AI가 만든 각본을 재집필하게 할 시 ‘초안 작성급’ 임금 지불 등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지만 이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진 못했다.

◇ 148일 만의 파업 종료…“AI 트레이닝 참여 vs 저작권 상실”

WGA 회원들과 SAG-AFTRA 회원들이 지난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넷플릭스 스튜디오 밖에서 피켓을 들고 대기하고 있다.(사진=AFP)


“27일 오전 12시 1분(현지시간) 노조 지도자들은 금지 명령을 해제하고 파업을 종료하기로 만장일치로 투표했다.” WGA는 조합 홈페이지를 통해 파업 시작 148일 만에 파업 종료 선언을 했다. 지난 20일부터 진행된 AMPTP와의 5일 여 간의 협상 끝에 이룬 ‘잠정적 합의’다.

작품 제작 시 스튜디오가 AI 도구를 부분적으로 사용하더라도 작가들의 지적재산권과 보상을 보장하고 있어 양측이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WGA 홈페이지에 따르면 합의안에는 △AI 문학 자료 작성·재작성 불가 △AI자료를 ‘원본’으로 간주 불가 △AI로 인한 작가 신용 훼손 방지 △스튜디오의 작가에 대한 AI 사용 강제 금지 △AI 훈련에 작가 자료 이용 시 상호 간 MBA(최소기본협약)에 따른 반대권 등이 잠정 합의안에 포함됐다.

그러나 여전히 시나리오 작가 미셸 아모르가 우려한 ‘잠재적 일자리 위협’에 대한 대안은 뚜렷하지 않다. 디지털 미디어 회사 IAC의 회장인 베리 딜러는 26일 CNBC에서 합의안을 언급하며 “AI로부터 작가를 보호하기 위한 문구를 만들기 위해 몇 달을 보냈지만 결국 아무것도 보호하지 못하는 문구가 나왔다”며 “(무자비한 트레이닝을 허용하게 해) 저작권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방침”이라고 지적했다.

베리 딜러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에 두명의 작가가 지난 7월 소송을 제기한 일화를 언급했다. NBC뉴스 등에 따르면 당시 챗GPT 등 AI는 원고의 허락 없이 책을 읽고 복제해 훌륭한 요약본을 만들어냈다. 원고는 해당 콘텐츠가 자신의 저작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채 재판을 기다리는 상태다. 이에 작가, 배우, 제작사 조합에 모두 가입한 조합원 알렉스 윈터는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지는 항상 미지수”라며 “노조가 AI와 관련한 권리를 주장할 때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3년간의 잠정 합의안에는 △3년간 기본급을 매년 5%, 4%, 3.5%씩 인상 △스트리밍 재상영 시간에 따른 추가 분배금 등 OTT 환경 변화에 따른 대안 등도 추가됐다. 조합의 동부·서부 이사회가 모두 파업 종료를 승인함에 따라 이날부터 이들은 일터로 복귀하게 된다. 미 현지 언론은 내달 2~9일 진행되는 조합원 투표가 남아있지만 이들의 결속이 강한 상황이어서 무난히 가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작가들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14일 시작된 SAG-AFTRA 파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CNN 등에 따르면 경제학계는 이들 양대 노조의 파업으로 전국적으로 약 50억달러(약 6조 7575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추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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