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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처벌만능주의는 실패했다

최훈길 기자I 2023.06.19 06:10:00

임무송 인하대 초빙교수·일자리연대 운영위원장



[임무송 인하대 초빙교수·일자리연대 운영위원장] 대한민국은 형벌 중독사회다. 처벌 조항 없는 법률은 실효성 없는 선언적 조항으로 치부되기 일쑤이고, 피의자 구속 여부가 유무죄와 동일시된다. 노동관계에서도 형벌 의존도가 끊임없이 높아지면서 자치는 설 곳을 잃어버렸다.

개별적 노동관계의 기본법인 근로기준법은 거의 모든 사업주 의무에 대해 형벌을 두고 있다.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법도 온통 처벌 규정 투성이다. 벌칙만 보면 도대체 이게 노동법인지 형법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정작 산업과 노동 현장을 보면 형벌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를 고리로 한 먹이사슬만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임금을 체불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정부도 2200여명의 근로감독관을 체불 행정에 투입하고 있다. 그런데도 2011년 이후 임금체불액은 1조원 아래로 떨어지질 않는다. 체불임금의 80% 이상이 사업장 휴폐업이나 경영난 때문이니, 사업주를 구속하고 처벌해도 체불액이 줄지 않는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아예 명칭 자체가 처벌법이다. 사망 사고는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국제적으로 입법례를 찾기 어려운 강력한 제재이지만,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중대재해는 줄지 않고 법률회사와 안전기관만 돈을 번다니, 누구를 위한 처벌법인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노동조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사자치를 확보하기 위해 형벌을 투입하는 모순이 두드러져도 노사는 되려 상대방에 대한 처벌 강화를 요구한다.

원인과 효과의 정밀진단이 결여된 형벌 조항의 남발은 집행의 결손과 처벌회피 행태의 만연을 초래한다. 노사자치 후퇴와 사법 과잉으로도 이어진다. 재정권을 가진 예산당국이 고용 사업을 좌지우지하듯이,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노동 사건을 주도하게 된다.

외국의 예를 보면 중국은 시정명령을 하고, 배상책임이나 벌금을 구체적 사건에 따라 차등화해 부과한다. 독일은 원칙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한다. 법 위반이 과실에 의한 경우 벌금이나 가벼운 징역, 고의로서 근로자 건강에 위해를 가한 경우 무거운 징역 등 차등적으로 형사 책임을 부과한다. 일본은 법정형의 정도가 우리보다 훨씬 가볍다.

(자료=고용노동부)


반면에 우리나라는 형법적 보호의 실패에도 계속 더 강력한 처벌을 찾는다. 노동개혁 논의에서도 노동의 형사화(刑事化)와 사법화(司法化)에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 없다. 때마침 국가적 과제로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기회에 제재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도 노동법상 의무 이행 확보방안을 다음과 같이 선진화해야 한다.

첫째 형법에 포섭될 수 있는 규정은 노동법에서 벌칙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침해와 같이 행정의무를 위반해 형법상 보호되는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만 형벌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에 관해서는 노사 자율과 경제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벌칙 조항은 삭제하고, 행정명령 위반에 대해서는 과태료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노사자치의 본질을 침해하는 행위는 노사 모두 형벌로 규율하되, 경제적 제재를 원칙으로 하면서 고의나 과실에 따른 행위를 차등적으로 처벌해야 한다.

합리적 노사관계는 자율과 책임, 참여와 협력을 지향하며 그 첫 번째 과제가 노동형벌의 합리화다. 과잉형벌에 의존하지 않는 노사의 자기 주도적 혁신이야말로 하이예크(F. Hayek)가 경고했던 ‘예속에의 길’을 차단하고, 공존과 상생의 노경 관계로 나아가는 빠른 길이다. 노동에 있어서 처벌 만능주의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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