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백이처럼 특수 훈련으로 위급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개가 아니더라도 이제 한국 가정에서 애완견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한국인의 개 사랑은 1인 가족이 급증하고 있는 최근 들어 더 진해지는 추세다. 가까운 지인의 반려견이 죽으면 부의금을 보내거나 장례에 필요한 용품을 사서 보내는 새 풍속도도 보인다. 소셜 미디어의 메신저 채팅방에는 손자들 사진과 자랑 못지않게 반려견에 대한 애정을 토로하는 글이 늘어난다.
이 땅에서 한민족과 같이해 온 토종개의 역사는 길다. 201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받은 동경이는 신라시대부터 경주 지역에서 자랐다고 전해지는데 신라 고분에서 나온 토우에도 등장한다. 토우에는 꼬리가 뭉툭한 개들이 많이 나오는데 바로 동경이가 꼬리가 짧아 ‘꼬리 없는 개’라 불린다. 1962년 천연기념물이 된 진돗개는 지능이 높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두터워 수천 km 떨어진 곳에서도 집을 찾아온다.
삽살개는 털이 긴 토종개다. ‘삽’이 쫓아낸다, ‘살’이 귀신이나 액운을 뜻해 잡귀를 쫓는 퇴마견으로 알려져 있다. ‘경산의 삽살개’는 1992년 천연기념물로 인정받았다. 털이 긴 개 얘기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충견 오수의 개’ 설화다. 오수(獒樹)라는 지명을 낳을 만큼 그 유래가 오래됐다. 고려 고종 41년인 1254년에 간행된 시화집인 최자의 『보한집』에는 주인 목숨을 구하고 죽은 털이 긴 개가 등장한다. 전라도 남원부 거령현(현 전북 임실군 시자면 영천리)에 살던 김개인은 충직한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잔치에 갔다가 만취해 돌아오는 길에 둔남면 상리(현 오수면 오수리) 인근 풀밭에서 잠이 들었다. 이때 들불이 나 그가 누운 곳까지 불이 번지기 시작했고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다 찾아 나선 개가 위험에 처한 김개인을 위해 근처 개울가로 뛰어들어 몸을 적신 뒤 들불 위를 뒹굴어 자신은 죽고 주인은 살렸다. 잠에서 깬 김개인은 충견을 기억하려 자신의 지팡이를 개의 무덤 앞에 꽂았는데 나중에 나무로 자라게 돼 ‘개 오(獒)’자와 ‘나무 수(樹)’자를 더해 이 고을의 이름을 오수라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다.
지금 임실군 오수면은 ‘세계적인 반려동물의 성지’로 거듭나려는 지역민의 활기로 새 봄을 맞고 있다. 스토리텔링이 훌륭한 문화유산의 전통을 현대 애완견 산업과 연결해 지역 활성화의 에너지로 삼겠다는 것이다. 반려동물 테마파크·장묘시설·추모공원·문화지구·동반호텔·특화용품 산업단지를 만들고 ‘세계 반려동물 산업 엑스포’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진행 중이다.
올해 문화재청은 기존 문화재란 명칭 대신 ‘국가유산’이라는 큰 틀 아래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의 세 갈래로 분류체계를 정리했다. 또 동물, 식물, 지질, 명승 등의 기념물을 비롯한 자연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활용하기 위한 기본원칙과 규정을 담은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 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코로나19 이후 인류가 새 문명으로 거듭나는 길 위에서 문화유산을 활용하는 미래전략은 국력을 키울 핵심 인자다. 오수면 주민들이 자연유산을 활용해 공동체를 회복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과정은 다른 지역민에게도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