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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의의 기회, 헬름스 버튼법 내달 2일 발효”…EU “보복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17일(현지시간) 이른바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문제에서 대척점에 선 쿠바 정권을 압박하고자 ‘헬름스 버튼법’ 카드를 전격 꺼냈다. 1996년 발효된 이 법은 60년 전 쿠바 공산혁명으로 정권에 빼앗긴 자산을 돌려받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몰수된 자산을 통해 이익을 얻는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다만, 이 법이 쿠바에 투자한 유럽·일본·캐나다 등 동맹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만큼, 그동안 미국 대통령들은 그 효력을 막고자 6개월 단위로 발동을 유예해왔다.
하지만, 더는 쿠바를 그대로 놔둘 수 없다고 판단한 트럼프 행정부는 강공을 택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쿠바 출신 미국인들을 위한 정의의 기회”라며 “20여 년간 가동돼온 소송 금지 조치를 갱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따라서 미국 시민권을 받은 쿠바인들은 내달 2일부터 쿠바 공산혁명 이후 국유화한 재산을 바탕으로 각종 이권을 누리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이 경우 유럽 등의 기업이 수백억 달러 규모의 보상 문제 등에 휘말리면서 그 여파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지난 10일 폼페이오 장관에게 발송한 서한에서 쿠바에 투자한 EU 기업이 불이익을 당할 경우 “보복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강력 반발한 이유다. 모게리니 고위대표는 서한에서 “EU는 다른 국제 파트너들과 협력을 포함해 EU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법원에 어떤 소송이 제기되면 유럽 기업이 이에 대항해 유럽법원에서 맞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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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보조금 갈등도 매머드급 악재로 꼽힌다. EU 집행위는 이날 미 항공사 제조업체인 보잉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조금 탓에 EU 기업이 피해를 봤다며 200억달러(22조7000억원)어치의 보복관세 부과 대상 리스트를 내놓았다. 리스트에는 미국산 핸드백과 트랙터, 헬리콥터, 비디오 게임기, 여행용 가방, 담배, 생선, 마른 과일, 케첩 등이 총망라됐다. EU는 내달 31일까지 회원국들과 머리를 맞댄 후 최종 리스트를 결정할 예정이다.
지난주 미국이 유럽 항공사 에어버스에 대한 EU의 보조금 지급을 지적하며 이 관행이 철회될 때까지 110억 달러(12조5000억원) 규모의 관세 폭탄을 매길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한 보복 차원이다. 당시 미국은 보복 대상 리스트에 EU산 항공기와 헬리콥터, 항공기 부품과 같은 공산품뿐 아니라 와인·치즈와 같은 농축산물, 연어·문어·게와 같은 해산물 등을 망라했다. 양측은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이후에도 이 문제를 두고 옥신각신해왔으며, 현재 WTO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재개에 합의한 양측간 무역협상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지난해 6월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무역전쟁 코앞에까지 갔던 양측은 새 무역협정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기로 합의, 간신히 정면충돌을 피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협상은 순조롭지 못했다. 미국 측이 EU에 공산품의 관세 철폐와 서비스 시장 개방 확대뿐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농축산물 시장 개방 확대까지 요구하면서다. 미 상무부는 수입차에 대한 25%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다. 이 경우 EU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독일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