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 생존자 홍춘호 할머니
130호 살던 마을 잿더미로.. 살아남아도 뿔뿔이
'입막음' 당한 70년.. "이제야 겨우"
| 홍춘호 할머니가 마을 지도를 가르키며 제주4.3사건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사진=이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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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동광마을은 속칭 잃어버린 마을이다. 제주 방언으로 ‘무등이왓’이라 불리던 곳이다. 한때 130여 호가 모여 살던 마을이었으나 제주4.3사건 이후 터만 남았다. 집들은 사라지고 한참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이 길과 집터를 겨우 구분했다.
“그 마을에 살았다는 이유로 다 죽여부렀는기 어찌 돌아와 다시 살꽈. 딴데서 살지.”
지난달 24일 동광마을 터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홍춘호(81) 할머니는 70년 전에 겪은 비극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당시 11세 소녀였던 그다. “갑자기 들이닥친 군과 경찰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을 폭도라 부르며 무자비하게 죽였다”며 “나는 겨우 살아났지만 동생들은 영양실조로 죽었고 마을 사람들도 사라져 30여 호도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 할머니는 터만 남은 고향 마을을 걸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한때 거리서 뛰놀던 마을 동무들과 이웃들이 살던 집들이 눈에 선하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마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복원 지도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 기억을 되살렸다.
동광마을의 비극은 1948년 11월 15일에 시작했다. 광평리에서 작전을 벌이고 내려온 토벌대는 마을을 포위한 채 주민을 집결시켰고 집단 총살을 시작했다. 집이 불타고 사람들이 학살되자 주민은 마을 인근으로 숨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토벌대의 추격에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시신을 수습하려다 잠복해있던 이들에게 잡혀간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붙잡힌 이들은 서귀포 정방폭포 부근에 있던 수용소에 갇혔고 며칠 뒤 집단 총살당했다.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 따르면 동광리에서만 166명이 희생당했다. 대부분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들이었다. 동광마을과 같은 사연을 가진 마을이 제주도에 109곳이다.
홍춘호 할머니는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다. 그는 부모의 손을 붙잡고 동굴에 피신했다. 영화 ‘지슬’에서 나온 그 동굴이다. 제주 사람들은 동굴을 ‘궤’라고 불렀다. 좁은 궤 안에서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40여일간 동란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토벌대에 들킬까 불을 피우지도 못했다. 갈증이 나면 억새를 빨대처럼 이용해 동굴에 고인물을 마셨다. 주린 배는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밖으로 나가 구해오는 곡식 몇 톨로 채웠다. 당시를 놓고 홍 할머니는 “언제 죽을지 몰라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며 “짐승보다 못한 생활이었다”고 돌이켰다.
살아남은 이들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마을에 돌아갔다가는 또 몹쓸 짓을 당할까 두려웠다. 가족과 이웃, 친구가 목숨을 잃은 곳이라는 트라우마가 이들을 지배했다. 홍 할머니는 “어떤 할머니는 돼지우리에 숨어 혼자 살아났지만 이후 평생을 후회했다”며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자책 속에 살아야했다”고 말했다.
제주도 주민들은 섬 밖에서 온 사람들을 ‘뭇것들’이라 낮잡아 불렀다. 예전부터 본토와 거리를 두는 생활이었지만 제주4.3사건 이후 괴리가 심해졌다. 악랄했던 토벌대의 대부분이 육지에서 온 군경이나 서북청년단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홍 할머니는 “경찰을 피해 산으로 도망다녔는데 난리가 끝난 후에는 그래도 착한 경찰을 만나 식모살이를 하며 끼니를 해결했다”며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고 했다.
“당시 토벌대가 마을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했다하데. 우리는 공산주의가 뭔지도 몰랐지. 먹고 살기 바쁜디 어찌 그칸데. 제주4.3은 자슥들한테도 말을 못했어. 잡혀갈까봐. 허지만 세월이 지났서도 못 잊어븐다. 명이 기니까 이르케 뭇사람들 만나서 이야그허네. 많이 좋아졌지. 세상이 더 좋아져야지게. 그래야말구.”
| 홍춘호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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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사람이 살았던 동광마을터. 주민들은 사건 이후 마을에 돌아오지 않았고 현재는 잡초만 무성하다.(사진=이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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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춘호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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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춘호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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