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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왕족은 똑똑했다. 소중한 사우디의 석유산업을 지키기 위해 왕족이 아닌 민간 전문가에게 석유산업을 맡겼다. 60년 석유부가 생긴 뒤 네 명의 장관은 모두 민간 전문가였다. 어떤 왕족도 석유장관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자칫 석유 산업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해 사우디 왕족 스스로 만든 원칙이다. 그래서 사우디의 석유산업을 책임지는 석유장관은 왕족에게 일종의 금기(禁忌)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사우디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1985년생인 모하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자가 서 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의 아들인 모하마드 왕자는 사우디의 왕위 계승 2순위의 권력자다.
모하마드 왕자는 이미 모든 요직을 장악했다. 최연소 국방장관과 함께 석유를 포함한 사우디의 모든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경제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모하마드 왕자는 사우디 석유산업의 결정체인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회장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석유장관이 아람코 회장을 겸직하는 게 관례였다. 모하마드 왕자를 두고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란 별명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모하마드 왕자의 존재감이 극적으로 드러났던 사건은 지난 17일 카타르 도하에서다. 그는 전화 한통으로 초안까지 마련한 산유국간의 동결 합의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석유왕’으로 불리던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도 실세 왕자의 명령을 거스르지 못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진 순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사우디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석유정책을 사용하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지금의 사우디는 왕족의 입김이 커졌다.
젊은 사우디의 왕자는 석유산업을 장악한 것으로 그칠 태세가 아니다. 사우디를 아예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구상을 세웠다.
모하마드 왕자는 25일(현지시간) 사우디 국영방송과 인터뷰 형식으로 향후 15년간 사우디의 경제 개발 계획인 ‘비전 2030’을 공개했다. 사우디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를 상장하겠다는 것이다.
아람코의 기업 가치는 2조5000억달러로 추산된다. 현재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인 애플(5800억달러)의 4배 이상이다. 이를 재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를 만들고, 사우디의 석유산업 비중을 50%로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모하마드 왕자는 “아람코 지분 매각은 전체 경제 개혁 조치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사우디가 석유에 지나치게 중독된 위험한 현실을 벗어나 실업과 주택 문제 해결에 경제 정책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모하마드 왕자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손자병법’과 윈스턴 처칠의 책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살만 국왕은 81세의 고령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30세 젊은 왕자의 어깨에 사우디의 미래와 전 세계 석유산업의 운명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