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개성공단에 삼성전자가 있었다면

류성 기자I 2016.03.14 07:00:00
[이데일리 류성 벤처 중기부장] 정부의 갑작스런 철수결정으로 개성공단이 문을 닫게 된 지 한 달이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성공단 피해 기업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커져만 가는 형국이다. 정부가 실질적 피해보상을 해주지 않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한 달간 정부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힘들어하는 개성공단 기업들의 처지도 이해할 만하다. 실제 그간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의 피해를 줄여주기 위해 한 일이라곤 대출을 연장하거나 늘려준 게 고작이다. 심지어 아직까지 정부는 정확한 피해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개성공단 문제를 사실상 등한시하는 모습이다. 그 사이 123개 공단 입주업체 중 상당수는 부도에 직면해 있고 직원 2000여명 중 수백명이 이미 일자리를 잃었거나 잃기 직전이다.

정부가 강경 대북정책아래 개성공단 철수라는 강수를 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수긍이 간다. 하지만 피해입은 입주업체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지원책을 보면 실망스럽다. 정부는 ‘대(국가안보)를 위해 소(기업이익)는 희생해도 된다’는 자기 변명과 논리에만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정부는 이번 개성공단 철수결정을 내릴때 입주기업들과 사전에 상의 한번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철수할 때도 시간에 쫓겨 야반도주하듯 제대로 짐조차 챙기지 못하고 개성을 떠나왔다. 이후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도 법적으로 근거가 없다며 절대불가라는 입장을 정부는 고수하고 있다. 입주업체로서는 공단폐쇄라는 천재지변보다도 더한 불행에 직면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지만 정부로부터 실질적 도움은 원천 차단돼 있는 상황이다.

만약 개성공단에 삼성전자(005930)현대차(005380)가 입주해 있었다면 어떻게 이 사태가 전개됐을까. 정부가 공단철수 조치를 취하기 전에 이들 기업에 미리 귀띔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피해보상도 지금처럼 모르쇠로 일관하기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요컨대 개성공단 사태에 대한 정부 대처를 보면 ‘힘없는’ 중소기업들은 정부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다는 판단이다. 지금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정부의 무성의와 푸대접에 가장 억울해하고 있다. 경위야 어떻든 개성공단 폐쇄는 정부가 공단철수라는 카드를 전격 꺼내 들면서 비롯됐다. 그로인해 발생한 기업들 피해는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당연히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논어 안연편을 보면 자공이 공자에게 나라를 지키는 핵심요소를 묻는 대목이 나온다. 이 질문에 공자는 신(信), 식(食), 병(兵)의 순으로 중요하다고 답한다. 신은 믿음이고 식은 식량이며 병은 국방력을 뜻한다. 공자는 특히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유지될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강조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투자 판단을 할 때 무엇보다 우리 정부를 믿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정부에 그야말로 발등이 찍힌 꼴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적정한 보상으로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개성공단 중소기업도, 거기에 속한 근로자도 모두 이 땅의 기업이자 근로자다. 그래야만 개성공단 기업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늦게나마 믿음으로 바뀔 수 있다. 개성공단 기업들의 정부 불신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남북경협 사업에 정부를 믿고 과감히 투자에 나서는 기업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결국 통일이 지연되는 나쁜 결과를 낳게 된다.

북한 핵무기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국가안보에 더욱 위협적이라는 것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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