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추천한 책 ‘고수의 생각법’의 저자 조훈현 9단은 “복기의 의미는 자기 반성이다. 이것은 깊이 있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며 겸손과 인내를 요구한다”며 복기를 통한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가는 늘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 때문에 사업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 경영에 반영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복기는 필수적이다.
박 회장에게도 복기는 일상이다. 박 회장은 “가로 19줄, 세로 19줄로 이뤄진 바둑판 위에서는 수억분의 1의 확률로 한 수, 한 수가 놓인다”며 “복기는 참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 5년 간 박 회장은 힘든 복기를 반복했다. 2011년부터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주고 받은 소송만 8건. 승소와 패소가 엇갈리는 와중에 박 회장은 지난 경영 행보와 더불어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우건설 인수 등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그룹을 위기에 빠뜨린 형의 판단이 아쉬웠고, 그로 인한 경영권 분쟁을 바라보는 외부의 싸늘한 시선은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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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이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네면서도 형과의 관계 회복 여부에 대해서는 “갈등이 많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회장은 “아직 형사소송이 진행 중”이라며 “법률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순수한 화해는 이뤄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형제가 다시 손을 맞잡는 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박 회장은 화해를 위한 선결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모든 법률 문제가 해결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일이 없을 때가 되면”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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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석유화학그룹은 내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할 대기업집단 명단에 새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금호아시아나가 공정위를 상대로 “금호석유화학 등 8개 계열사를 금호아시아나 소속 회사로 지정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측 손을 들어주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열 분리가 이뤄졌다.
한 재계 인사는 “이번에 계열 분리 판결을 내린 황병하 부장판사는 검찰이 박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배임 혐의 소송의 재판장을 맡았던 인물”이라며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 간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두 기업을 분리하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의 자산 규모는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인 5조원을 상회한다. 재계 순위는 60위권 안팎이 될 전망이다. 대기업집단이 이행해야 할 상호출자 및 신규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중요 경영상황 공시 등의 의무도 지게 된다.
박 회장은 “그동안 금호아시아나와 함께 묶여 있는 바람에 금융권 자금 조달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며 “분리되면 여신한도를 별도로 부여받게 돼 경영 측면에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능력보다 신뢰가 우선”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
박 회장이 올해 초 발표한 신년사에서 인용한 드라마 ‘미생(未生)’의 대사다. 이는 한 번 믿은 인재는 오래 두고 중용하는 박 회장의 인재론과 맞닿아 있다.
박 회장은 “그룹 내 사장급은 대부분 예전부터 있었던 사람들”이라며 “큰 하자가 없으면 가능한 오래 데리고 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의 능력 차이는 한 시간 정도만 더 일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그룹의 오너이자 최고경영자다. 1948년생으로 광주 제일고와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4남으로 1976년 금호석유화학 과장으로 입사하며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금호실업, 금호건설 등을 거친 뒤 1984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2009년까지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을 맡고 있었으나 형인 박삼구 회장과의 갈등으로 계열 분리해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으로 독립 경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