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②"형과의 화해요? 상처주지 않을 때가 되면…"

이재호 기자I 2015.12.09 05:00:00

박삼구 회장과 5년 간 소송전만 8회
실패 되짚는 ''복기''…"참 어려운 일"
공식적 계열분리, 경영 플러스 요인

[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복기(復棋). 바둑 대국이 끝난 뒤 첫 수부터 마지막 수까지 순서대로 다시 두는 것이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추천한 책 ‘고수의 생각법’의 저자 조훈현 9단은 “복기의 의미는 자기 반성이다. 이것은 깊이 있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며 겸손과 인내를 요구한다”며 복기를 통한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가는 늘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 때문에 사업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 경영에 반영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복기는 필수적이다.

박 회장에게도 복기는 일상이다. 박 회장은 “가로 19줄, 세로 19줄로 이뤄진 바둑판 위에서는 수억분의 1의 확률로 한 수, 한 수가 놓인다”며 “복기는 참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 5년 간 박 회장은 힘든 복기를 반복했다. 2011년부터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주고 받은 소송만 8건. 승소와 패소가 엇갈리는 와중에 박 회장은 지난 경영 행보와 더불어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우건설 인수 등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그룹을 위기에 빠뜨린 형의 판단이 아쉬웠고, 그로 인한 경영권 분쟁을 바라보는 외부의 싸늘한 시선은 부담스러웠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 추천 도서인 조훈현 9단의 ‘고수의 생각법’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박삼구 회장은 그룹 재건을 위한 금호산업 인수를 추진하면서 동생인 박 회장과의 화해 가능성을 언급했다.

박 회장은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이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네면서도 형과의 관계 회복 여부에 대해서는 “갈등이 많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회장은 “아직 형사소송이 진행 중”이라며 “법률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순수한 화해는 이뤄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형제가 다시 손을 맞잡는 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박 회장은 화해를 위한 선결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모든 법률 문제가 해결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일이 없을 때가 되면”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자신의 경영 철학과 인재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내년 공식 그룹사로 새 출발

금호석유화학그룹은 내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할 대기업집단 명단에 새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금호아시아나가 공정위를 상대로 “금호석유화학 등 8개 계열사를 금호아시아나 소속 회사로 지정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측 손을 들어주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열 분리가 이뤄졌다.

한 재계 인사는 “이번에 계열 분리 판결을 내린 황병하 부장판사는 검찰이 박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배임 혐의 소송의 재판장을 맡았던 인물”이라며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 간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두 기업을 분리하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의 자산 규모는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인 5조원을 상회한다. 재계 순위는 60위권 안팎이 될 전망이다. 대기업집단이 이행해야 할 상호출자 및 신규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중요 경영상황 공시 등의 의무도 지게 된다.

박 회장은 “그동안 금호아시아나와 함께 묶여 있는 바람에 금융권 자금 조달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며 “분리되면 여신한도를 별도로 부여받게 돼 경영 측면에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능력보다 신뢰가 우선”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

박 회장이 올해 초 발표한 신년사에서 인용한 드라마 ‘미생(未生)’의 대사다. 이는 한 번 믿은 인재는 오래 두고 중용하는 박 회장의 인재론과 맞닿아 있다.

박 회장은 “그룹 내 사장급은 대부분 예전부터 있었던 사람들”이라며 “큰 하자가 없으면 가능한 오래 데리고 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의 능력 차이는 한 시간 정도만 더 일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그룹의 오너이자 최고경영자다. 1948년생으로 광주 제일고와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4남으로 1976년 금호석유화학 과장으로 입사하며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금호실업, 금호건설 등을 거친 뒤 1984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2009년까지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을 맡고 있었으나 형인 박삼구 회장과의 갈등으로 계열 분리해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으로 독립 경영을 하고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