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괄 약가인하 3년…국내제약사 처방실적 수렁에 빠졌다

천승현 기자I 2015.04.15 03:00:00

2011년 상위 20개사 2014년 처방실적 비교
국내사 20곳 11%↓..다국적사 20곳 5%↑
특허만료 오리지널과 복제약 동일가로 복제약 처방 기피
다국적사 제품 판매 대행으로 오리지널 쏠림 현상 가중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지난 3년간 국내제약사의 의약품 처방실적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반면 다국적제약사는 처방실적이 증가하며 반사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강력한 리베이트 규제로 영업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2012년 약가인하제도 개편으로 복제약(제네릭)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제네릭 처방이 줄어든 탓으로 분석된다. 국내사들이 다국적제약사 제품 판매 대행에 집중하면서 오리지널 의약품의 매출확대를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1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건강보험 의약품 청구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국내사 상위 20곳의 처방실적은 3년만에 4조9266억원에서 4조3916억원으로 10.9% 줄었다. 반대로 다국적제약사 상위 20곳의 처방실적은 같은 기간 3조6557억원에서 3조8222억원으로 4.6% 증가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 4월 국민들이 부담하는 약품비 절감을 위해 건강보험 의약품의 가격을 평균 14% 일괄 인하했다. 당시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의약품 1만3814개 중 6506개 품목이 약가가 깎였다.

2011년 국내사 상위 20곳 중 종근당(185750), CJ헬스케어, 녹십자, 보령제약 등 6곳을 제외한 14개사의 처방실적은 줄어들었다. 국내업체 중 처방실적이 가장 많은 대웅제약(069620)은 12.0%, 동아에스티(170900)는 27.4% 각각 쪼그라들었다. 지난 몇 년간 가파른 실적 상승세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유한양행(000100)도 처방실적이 13.3%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통상 노인인구와 만성질환자의 증가로 의약품 사용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국내제약사들의 집단 처방실적 부진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라고 진단했다.

국내제약·다국적제약사 상위 20곳 청구실적 비교(단위: 억원, %)
※다국적제약사 처방실적은 합병·분할 고려해 조정, 화이자=화이자+와이어스, MSD=MSD+쉐링프라우, 애보트=애보트+애브비
전체 약품비 규모가 2011년 13조4290억원에서 2014년 13조4491억원으로 유사한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사 손실분을 다국적제약사가 상당부분 가져갔다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같은 기간 요양급여비용에서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9.15%에서 26.49%로 2.66%포인트 감소했다. 일괄 약가인하로 약품비 상승을 억누르는데 성공했는데, 절감 효과를 사실상 국내업체들이 감수한 셈이다.

국내사들의 부진 원인으로 약가제도 개편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지난 몇 년간 리베이트 규제 강화로 영업환경이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약가인하가 개편되면서 복제약(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국내업체들의 입지가 위축됐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2년 시행한 약가인하 제도의 핵심은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의 가격을 동일한 수준으로 책정한다는 내용이다. 보험약가가 100원인 오리지널 의약품은 특허가 만료되면 최종적으로 53.55원으로 떨어진다. 제네릭도 오리지널과 똑같은 53.55원까지 받을 수 있다.

제품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국내사들이 실적 부진 만회를 위해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판매에 나서면서 국내업체들의 부진이 더욱 깊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실제로 유한양행, 대웅제약, 일동제약, 동화약품 등 국내업체들의 지난 3년간 상품매출 비율이 수직 상승했다.

국내업체의 한 마케팅본부장은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제네릭 제품의 경쟁력 악화로 제품력이 열세인 국내업체들은 최악의 위기 상황에 처해졌다”면서 “남의 제품이라도 팔아야 연구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이다. 연구개발 성과가 늦어질 수록 경쟁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연도별 건강보험 약품비 추이(단위: 억원,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도별 요양급여비용 중 약품비 비율 추이(단위: %,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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