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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총장이다]‘학자형에서 CEO형까지’ 대학 총장도 진화한다

신하영 기자I 2013.12.20 07:30:00

수천억 발전기금 모금, 경영능력 갖춘 CEO형 각광
내부 개혁·구조조정, 학생·교수사회 반발 직면
경영능력에 갈등조정까지..멀티플레이형 부상
''4년은 너무 짧다'' 189개 대학중 27.5%가 연임총장

CEO형 대학 총장의 원조로 통하는 송자(오른쪽)·어윤대(왼쪽) 전 연세대·고려대 총장.(사진 =연합뉴스)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에는 ‘학자형 총장’이 많았다. 대학을 이끌 경영 능력보다는 얼마나 존경을 받는 학자인가가 총장으로서의 자격을 논하는 기준이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외부 모금 능력과 경영 능력을 겸비한 ‘CEO(최고경영자)형 총장’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총장이 외부에서 기부금을 모금해 대학 발전에 써야 구성원에게 환영받았다. 특히 세계 대학 순위까지 신경을 써야 했던 서울 주요 대학의 총장들은내부 혁신을 이끌 수 있는 경영능력까지 요구받았다.

◇ ‘CEO형 총장’ 전성시대

CEO형 총장의 ‘원조’로는 송자 전 연세대 총장(1992~1996년)이 꼽힌다. 송 전 총장은 재임 기간 중 1500억원의 기부금을 모금하면서 본격적인 CEO 총장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송 총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인사는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이다. 어 전 총장은 2003년 고려대 제15대 총장으로 취임한 뒤 4년간 4000억원에 달하는 발전기금을 끌어 모았다. 이 같은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고려대는 2006년 영국 더 타임스가 발표한 세계 대학 순위에서 사상 처음으로 150위에 올랐다.

2000년대 중반 대학가의 개혁을 주도한 서남표 전 KAIST 총장과 오영교 전 동국대 총장도 CEO형으로 분류된다. 서 전 총장은 2006년 9월 KAIST에 부임한 뒤 대학가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켰다. 서 전 총장은 취임 후 교수 정년 보장(Tenure) 심사를 강화, 2008년 한 해에만 정년 보장 신청 교수 38명 가운데 15명(39.5%)을 탈락시켰다. 서울대·포스텍·연세대·성균관대 등 주요 대학들도 KAIST에 이어 정년 보장 심사를 강화했다.

오 전 동국대 총장도 대학가에서 개혁 전도사로 통한다. 그는 2007년 취임한 뒤 ‘고객 만족’을 강조, 전체 교수의 강의평가 점수를 공개하는 등 대학가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학내 갈등 격화에 ‘멀티플레이어형’ 각광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이들의 대학 개혁이 잇따라 학내 갈등을 불러오면서 ‘CEO형 총장’의 주가도 하락했다. 서남표 전 총장은 내부 개혁에는 성공했지만, KAIST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과 교수사회의 반발에 밀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오 전 총장도 학생 수요가 높은 학과에 정원을 몰아주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다가 내부 반발에 부딪쳤다. 해마다 학과별 취업률·입학 성적 등을 평가해 정원의 10%를 평가점수가 높은 학과에 배분하는 그의 정책은 “대학의 인문학과 기초학문을 고사시킨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 대학 총장들은 내부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까지 요구받는다. 고석규 목포대 총장은 “대학 총장은 멀티플레이어”라며 “학자·CEO·행정가적 능력이 모두 요구된다”고 했다. 매년 학생 수가 줄어드는 ‘대학 위기 시대’를 극복할 경영 능력도 중요하지만, 대학 구성원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행정 능력도 빼놓을 수 없는 총장의 덕목이라는 얘기다.

◇“4년은 너무 짧다”… 연임 총장 증가세

최근 대학가에 연임 총장이 늘어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본지가 전국 189개 대학의 총장 프로필을 조사한 결과 52개교(27.5%)에서 연임 총장이 대학을 맡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한 사립대 교수는 “대학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발전계획을 수립한 뒤 이를 추진하기에는 총장 임기 4년은 짧다”며 “총장이 대학 경영자적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대학 발전을 이끌려면 단임보다는 연임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총장 연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서울 주요 사립대 총장을 지낸 한 명예교수는 “총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학내에 자신의 정치 기반을 구축하는 사례도 있다”며 “이런 경우 재임 중 자신을 지지하는 단과대에 선심성 행정을 펴거나 대외 평판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단시간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만 열중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학가에 개혁 바람을 일으켰던 오영교 전 동국대 총장.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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