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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기획]무한경쟁 시대의 생존전략, '아파트 브랜드史'

박종오 기자I 2013.10.02 07:00:00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아파트 브랜드가 국내에 첫 선을 뵌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1998년 동아건설의 ‘솔레시티’와 월드건설의 ‘월드메르디앙’이 그 선두였다. 1년 뒤인 1999년 브랜드 명은 쉐르빌·타워팰리스·가든스위트·하이페리온 등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위주로 확산됐다.

이전까지의 아파트 이름은 단출했다. 1960년대 초기 아파트는 ‘종암아파트’, ‘마포아파트’ 등 주로 지역명을 땄다. 정부 주도로 지어져 이름을 통한 차별화가 필요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1970년대 들어 민간 건설사의 성장과 아파트 건설 붐으로 단지 이름이 보다 복잡해졌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삼성 마포아파트’ 등 지역과 건설사 명을 함께 넣는 식이었다.

본격적인 아파트 브랜드시대는 ‘래미안’과 ‘e-편한세상’이 열었다. 대림산업은 2000년 용인 기흥구 보정동에 분양한 아파트에 ‘e-편한세상’이라는 이름을 처음 달았다. 그해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업계 최초로 브랜드 선포식을 열고 ‘래미안’을 공개했다. 지금은 친숙한 푸르지오·롯데캐슬·SK-View·아이파크 등은 모두 그 후발 주자들이다.

▲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 BI(brand identity)
달라진 주택시장의 여건이 아파트 브랜드 탄생의 계기였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국내 부동산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서울 아파트값은 1998년 13% 이상 폭락했고 건설사들은 미분양 아파트를 떠안았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 결과 수요자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건설사들이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수요자의 선택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깐깐해진 수요자들의 눈높이와 당시 정부가 부동산시장 부양을 위해 내놓은 분양가 자율화 방침은 민간 아파트의 상품화에 불을 지폈다. 고만고만한 아파트의 차별화 방법을 고민하던 업체들이 주택의 고급 브랜드화로 눈을 돌린 것이다.

아파트 브랜드의 프리미엄 전략은 되살아난 부동산 경기에 힘입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중견 건설사들도 ‘~빌’, ‘~힐’ 등의 이름을 단 브랜드를 선보이며 대열에 합류했다. 2007년에는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권 이내 건설사 중 91곳이 브랜드를 1개 이상 보유했다. 브랜드 아파트는 사회적 신분의 상징으로 발전했다. ‘당신의 이름이 됩니다’라는 래미안의 초기 광고 문구는 집에 자부심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좋은 예다.

높아진 브랜드 아파트의 상품가치는 집값에도 반영됐다. 이른바 브랜드 프리미엄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의 2005년 조사에 따르면 아파트값은 브랜드에 따라 3.3㎡당 최고 800만원(서울 강남구)까지 벌어졌다. 아파트 브랜드를 입지보다 선호하는 일도 흔해졌다. 외벽 도색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아파트 이름을 ‘자이’로 바꿨던 서울 대현동 럭키아파트 등의 사례는 이런 변화가 낳은 촌극이었다.

브랜드 성공 신화에는 어두운 면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분양가 거품’ 논란이다. 막대한 브랜드 광고비가 고스란히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사라진 브랜드도 적지 않다. 2008년 당시 100대 건설사 중 45곳이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을 신청했고 이 중 9개사 만이 회생했다. 브랜드 원조격인 솔레시티와 월드메르디앙은 기업 매각과 폐업으로 이제는 잘 볼 수 없는 이름이 됐다. 대주파크빌(대주건설), 유셸(씨앤우방), SPACE 향(삼능건설), 쌍떼빌(성원건설) 등도 같은 처지가 됐다.

반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된 시장에서 새롭게 부각된 브랜드도 있다. ‘부영 사랑으로’(부영주택), ‘호반베르디움’(호반건설), ‘중흥S-클래스’(중흥건설), ‘유보라’(반도건설), ‘우미린’(우미건설) 등은 불황을 넘는 아파트 브랜드계의 샛별이다. 또 다시 열린 아파트 판촉의 무한경쟁 시대에 시장은 브랜드의 퇴행 아닌 진화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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