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9일 새벽 5시45분. 강동소방서 대원들이 새카맣게 탄 문간방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은 잠든 것처럼 누워 있었다. 첫째 정민(11)이와 셋째 경철(6)이는 침대 위에, 둘째 청훈(8)이는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들은 몸 전체 또는 일부가 그을려 있었으나, 몸부림 친 흔적은 없었다. 질식해 숨진 듯했다.
경찰관인 아빠 금모(35)씨는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건물 근처에서 철야 경비를 돌다가, 엄마 정모(37)씨는 신문을 돌리다가 비보(悲報)를 들었다. 강동성심병원 빈소에서 엄마는 나란히 찍은 세 남매 사진을 붙들고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하며 울었다. 울다가 쓰러지고, 사람들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면 깨어나 또 울고….
“불쌍한 내 새끼들, 왜 거기 있니. 내 새끼를 살려주세요. 아직 할 일이 많아요” 하며 몸부림치는 엄마를 아빠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불은 이날 오전 5시11분쯤 3층 단독주택 맨 위층에 있는 금씨 집 거실에서 누전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방이 3개 있는 18평 크기의 작은 집. 삽시간에 커진 불길은 거실의 식탁 등을 태우며 맹독성 연기를 뿜어냈다. 같은 집 2층에 사는 공형철(19)군은 “오전 5시 좀 넘어 위층에서 ‘펑’ 하는 소리가 연거푸 나 나가보니 3층이 자욱한 연기로 꽉 차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세 남매의 부모는 모두 생업을 위해 외출 중이었다.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 소속(경장)인 금씨는 전공노 파업과 관련해 11월 초부터 3교대로 철야 근무를 하고 있었고, 아내 정씨도 조간신문을 배달하기 위해 이른 새벽 집을 나선 상태였다.
정씨는 생활고를 덜기 위해 2000년 9월부터 월급 70여만원을 받고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새벽 2~3시쯤 신문 보급소로 나가 1개 전문지와 3개 종합일간지 700여부를 돌린 뒤, 오전 7~8시쯤 집으로 돌아와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식사를 차려주고 학교에 보냈다. 작년까진 낮에 학원 강사로도 일했으나,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겠다며 그만뒀다.
동료 경찰관은 “금 경장은 봉급이 200만원 가량인데 애들 학비와 학원비로 늘 생활이 빠듯했다”며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끔찍히 사랑해 쉬는 날이면 새벽에 아내와 함께 신문을 돌리고 낮에는 온 가족을 데리고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곤 했다”고 말했다.
함께 하늘나라로 간 아이들끼리의 우애도 각별했다. 누나 정민이는 엄마가 없을 때면 동생들 옷 입고 양말 신는 것까지 챙길 정도로 동생들을 아꼈다. 심부름 갈 때도 꼭 양손에 동생들 손을 잡고 함께 다녔고, 친구들을 만나면 “내 동생 귀엽지?”라며 자랑했다고 한다.
옆집에 사는 한원택(여·60)씨는 “막내 경철이는 우리집 개 ‘백구’를 좋아해 같이 놀다가도 누나가 학교 갔다 오면 쪼르르 달려가 누나에게 매달리곤 했다”며 “아빠처럼 나쁜 사람 잡는 경찰이 되겠다던 경철이의 천진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내가 죄인이야, 죄인. 밖에 나가지만 않았더라면…, 엄마가 너희 옆에 있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엄마는 끝없이 오열하며 세 남매의 영정 곁을 떠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