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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전쟁 100일…불안한 휴전 속 '교착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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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원 기자I 2026.06.07 09:08:00

드론·미사일 교전 반복…호르무즈 봉쇄 지속
이란, 동결자금 즉시 해제 요구…협상 평행선
레바논 변수·파키스탄 중재…복잡한 종전 방정식
반전 여론·유가 불안…트럼프 중간선거 압박↑
한국 기업들 '탈중동 공급망' 구조 재편 본격화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의 포성이 울린 지 100일째를 맞았다. 지난 2월 2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은 지난 4월 8일 극적인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국지 충돌은 멈추지 않고 있다.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진 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주요 외신들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치페와폴스의 커스터 농장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휴전 100일…드론·미사일은 여전히 날아다닌다

6일(현지시간) 미 중부사령부는 호르무즈 해협을 향해 발사된 이란의 자폭형 드론 4기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이어 추가 공격 방어 차원에서 이란 고루크와 게슘섬의 해안 감시 레이더 기지를 타격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즉각 반발해 쿠웨이트 알리 알 살렘 공군기지와 바레인 주둔 미 해군 5함대를 향해 탄도미사일 7기를 발사했다. 미군은 6기를 요격했고 나머지 1기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란 외무부는 미국의 이번 공격이 4월 8일 휴전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미국이 불법적 행동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교전은 이란이 이달 초 쿠웨이트에 탄도미사일 13발과 드론 17발을 발사해 공항 인근에서 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한 지 며칠 만에 또다시 불거진 것이다. 휴전 합의 이후에도 국지적 충돌은 반복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잔존 미사일 능력이 개전 초 대비 “21~22% 수준”이라며 “상당한 양이지만 처음 공격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란은 강하고 자존심이 세다.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해 협상 타결이 임박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여전히 막힌 ‘세계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전 세계 에너지 수송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개전 이후 사실상 봉쇄 상태다. 블룸버그 선박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6일 오전 기준 민간 상선의 통항은 관측되지 않았고, 전날 양방향 각 3척의 통과만이 확인됐다. 전쟁 이전 하루 100척 이상이 오가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해협이 막힌 상태다.

미 중부사령부에 정통한 관계자는 뉴욕타임스(NYT)에 지난 두 달간 미군이 민간 상선 약 100척의 해협 통과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수치도 정상 통항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유가는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급등했다가, 최근 중국의 수요 둔화와 미국산 원유 수출 확대로 소폭 하락했다. 6일 미국산 원유는 배럴당 90달러대에 거래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96달러인데, 처음에는 300달러까지 갈 거라고들 했다”고 말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이란 간 합의가 이뤄질 경우 수일 내 호르무즈 해협 기뢰 제거 다국적 작전을 이끌 계획을 마련해 뒀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시민들이 이란 혁명의 지도자였던 고(故)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 고(故)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그려진 대형 광고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협상의 핵심 장벽은 이란 동결 자산

종전 협상이 풀리지 않는 핵심 이유는 이란이 미국에 동결 자산의 조기 해제를 요구하는 반면,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은 1차 합의 시 120억달러(약 18조7164억원)를 즉시, 이후 60일간 협상 기간에 240억달러(약 37조4328억원)를 추가로 받기를 원한다.

이란 최고지도자 자문인 모센 레자이는 CNN에 “240억달러는 미국에 큰돈이 아니다. 이는 미국 돈이 아닌 우리 돈”이라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에 현금을 제공한 것을 맹비난해 온 만큼,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불가피하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명확히 축소하고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을 넘기기 전에는 제재 완화나 자산 해제는 없다고 못 박았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 선임 자문은 WSJ에 “이란에게 동결 자산 해제는 단순한 유인책이 아니라 외교의 신뢰성과 국내 정당성을 증명하는 선불금”이라며 “이란이 가장 강하게 버틸 이슈”라고 분석했다.

이란이 보유한 동결 자산은 제재로 묶인 원유 수출 수익을 포함해 총 1000억달러(약 156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대부분은 이란의 제재 대상 은행 시스템과 연결이 막혀 중국, 카타르, 오만, 이라크 등지에 묶여 있다.

레바논 변수…협상 ‘고차방정식’ 더 복잡해져

종전 협상을 한층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변수는 레바논이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전면 휴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미국과의 협상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두 협상을 분리하려 한다.

로이터에 따르면 헤즈볼라 지도자 나임 카셈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부 간 체결된 휴전안을 거부했다. 이스라엘군의 철군 조건이 빠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스라엘은 자국에 인접한 친(親)이란 무장세력 해체를 위한 레바논 내 군사작전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레바논군은 6일 자국 장교 2명과 병사 1명 등 군인 3명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다시 중재 전면으로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중재 외교도 재가동됐다. 파키스탄의 모신 라자 나크비 내무장관이 6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 도착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회담에 나선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은 나크비 장관이 파키스탄 군 참모총장과 총리의 ‘특별 서한’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나크비 장관은 지난 4월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이란 첫 대면 고위급 협상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 등을 영접하며 중재 역할을 맡아온 핵심 인사다. 그간 후방에서 역할을 해온 카타르가 일보 후퇴하고 파키스탄이 다시 전면에 등판한 형국이다.

레바논군 총사령관 루돌프 하이칼 장군도 주말 사이 파키스탄을 방문한다. 이는 파키스탄의 중재 역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6일(현지시간) 레바논 나바티예에서 바라본 레바논 남부 상공에 이스라엘군의 공습 이후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로이터)
한국 기업 ‘탈중동 공급망’ 재편 속도

전쟁 100일은 우리 산업계에도 적지 않은 구조 변화를 촉발했다. 반도체·자동차·항공·정유 등 주요 업종이 중동 의존도를 낮추는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헬륨·브롬화수소 등 특수 가스와 핵심 소재의 복수 조달 경로를 가동하고 있다. 현대차(005380)·기아(000270)는 직접적인 생산 차질은 없지만 하반기 물류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은 일부 중동·유럽 노선의 중동 상공 우회 운항을 이어가고 있고, HMM(011200)·현대글로비스(086280) 등 해운사들도 운항 경로 조정과 비상 체제를 유지 중이다. 정유업계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남미·아프리카산 원유 도입 다변화를 검토하고 있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 3월 3일부터 5월 21일까지 중동 긴급대응 애로상담 데스크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734건에 달했다. 전쟁 초기 물류 차질과 비용 증가를 호소하는 단기 요청이 많았다면, 이제는 원부자재 수급, 바이어 연락, 계약 변경 등 구조적 대응이 필요한 과제들이 늘고 있다.

미국 공급망 컨설팅 업체 세라프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초래한 공급망 충격이 회복하기까지 몇 달이 아닌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앰브로즈 콘로이 세라프 최고경영자(CEO)는 “전쟁 위험이 기본 전제가 되면서 보험료와 보안 비용이 증가하고 운송 네트워크가 재설계될 것이며, 이런 비용은 휴전 협정이 체결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은 핵심 광물과 에너지 비축 확대를 검토 중이며, 글로벌 기업들은 효율 중심 공급망에서 안정성 중심 공급망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란 전쟁의 향배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마주한 미국 내 반전 여론과 11월 중간선거 지형, 이란 측의 경제난 심화 속에서 양측 지도자가 내릴 결단에 달려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NYT·시에나 폴의 지난 5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4%가 이란과의 개전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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