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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선생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한국어를 적는 글자가 있음을 알게 됐고 그 언문을 나흘 만에 깨쳤다고 한다. 그로부터 사흘 뒤 한국 사람들이 어려운 한문만 숭상하고 자신들의 효율적인 글자인 언문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 3년 뒤인 1889년 그는 ‘뉴욕트리뷴’(지금의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글은 완벽한 문자가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며 세계에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1891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출판해 한글로만 쓸 수 있음을 직접 보였다. 책의 제목을 내용과는 관계없이 ‘사민필지’로 한 것도 한글로 쓰면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헐버트 선생은 한글의 가치를 거의 잊혀 가던 시기에 일깨워준 큰 공적이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한글과 한국어가 우리 민족의 얼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하고 일상에서 쓰일 수 있게 방향을 제시해 준 사람은 주시경(1876~1914) 선생이었다. 주 선생은 16세 때 한문을 배우면서 한자만 읽어서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한국어로 풀이하자 비로소 내용을 이해하게 됐다. 이 경험을 통해 문자는 말을 적으면 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그때부터 한글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 선생은 1894년에 잠깐, 그리고 1896년 3월부터 배재학당에 다니기 시작해 그해 4월 독립신문사의 회계 겸 교보원(교정원) 일을 맡았다. 이 시기를 전후해 헐버트 선생과의 만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두 사람의 구체적인 만남에 대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주 선생이 편집해 세상에 나온 ‘독립신문’(1896년)은 한글만으로 쓰이고 띄어쓰기까지 갖춰 100년 뒤 한국의 신문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후 애국계몽운동, 국어국문 연구, 국어국문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이러한 활동은 ‘어문 민족주의’라고 부르는 이념으로 발전했다. 특히 교육을 통해 같은 이념을 지닌 제자들을 대거 양성했는데 이 제자들은 선생의 가르침대로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말과 글이 살아 있으면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면서 자주독립을 준비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문화 강국이 되고 경제 발전 및 정치가 민주화된 데에는 한글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우리가 한때 천대하던 한글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되살려낸 선구자들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헐버트 선생은 ‘한글 선각자’라고 부를 수 있으며 주시경 선생은 최현배 선생의 표현대로 ‘한글 중흥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