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피해를 수습 중인 한 공무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호우로 기자의 소중한 지인도 목숨을 잃었다. 장례식장을 찾기 위해 유가족에게 연락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 A 병원에 연락했다. 공무원들은 이분이 담당자라며 전화를 계속 넘겨주더니 최종에는 “시신을 찾았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떻게 시신이 행방불명 될 수 있단 말인가’, ‘병원에 일일이 연락해서 확인해봐야 하나’고 되물었다. ‘시신을 여러 병원에 뺑뺑이 도는 건가’, ‘어렵게 찾은 시신을 어떻게 이렇게 모실 수 있나’, ‘유가족들이 어떻게 장례를 치를 수 있나’고 따졌다. 전화를 넘겨넘겨 받은 공무원은 “A 병원으로 갔다는 말만 들었다”며 “거기 없으면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다.
‘시신 행방불명’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차에 전화가 왔다. 모공무원이라고 소개한 간부는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기자가 찾고 있는 지인은 조금 전에 A 병원으로 이송돼 안치됐다고 말했다. A 병원에서도 맞다고 재확인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묻자, 이 간부는 명단을 헷갈렸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바쁜 일이 있다며 전화를 끊었다. 황망한 비보에 황당한 해명까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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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이니 넘어가자’고 생각했다가 화가 불쑥 났다. 곳곳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족은 언론에 “충북도에 연락하면 알 수 없다고 하고, 청주시청에 전화하면 보고 올린다고 하더니 연락이 안 된다”며 불통을 호소했다. 현장을 찾은 충북도 고위공무원의 웃는 모습이 방송 중계되기도 했다. 차량 통제 등 사전 예방에 구멍이 뚫렸는데, 수습 과정에서도 유족 가슴에 피멍을 주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자본시장 출입기자가 뜬금없이 호우 대처를 언급한 것은 비슷한 일이 자본시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서다. 올해 상반기 시장을 흔든 주가조작·코인사기를 보자. 사전에 이를 탐지·조사·처벌하는 방벽이 탄탄하지 않았고, 지난 4월 주가 폭락이 터진 뒤 관계기관 엇박자까지 벌어졌다. 특히 사태가 터지면 ‘내 담당 아니다’며 공무원들이 전화를 넘기듯, 수년간 코인 대책은 어느 기관도 총대 메기를 꺼렸다.
우려되는 건 산적한 과제가 많은 하반기다. 주가조작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 자기주식 제도개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과 공매도 개혁 및 전면재개, 가상자산 회계·공시 투명성 제고 방안 등 쟁점 과제가 산적하다. 국회든 정부든 공무원이든 공공기관이든 총대 메기를 꺼릴 수 있다. 이럴수록 투자자들 피눈물만 계속된다.
해법은 초심(初心)이다. 기자가 겪은 ‘시신 행방불명’ 소동은 공무원들이 초심을 잊은 결과다. 호우 대처의 1순위는 ‘책임 추궁·회피’가 아니라 ‘재난 피해자 지원’이어서다. 이처럼 시장 대책도 투자자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코인, 공매도 등 쟁점 과제를 놓고 투자자들과 터놓고 소통하길 바란다. 그렇게 할수록 시장 리스크에 대한 탄탄한 선제적 방벽이 쌓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