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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미·중 사이 K반도체가 갈 길

김형욱 기자I 2023.02.14 06:15:00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이 바이든 정부에서는 반도체에 대한 집중 공세로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10월 한국, 일본, 대만을 포함한 반도체 동맹인 소위 ‘칩4(chip4) 동맹’을 제안한 것을 계기로 대중국 반도체 제조장비 판매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산 반도체 제조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하고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 수출을 제한했다. 올해는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않기로 했다. 네덜란드 ASML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에 심자외선 고광장비마저 수출하지 못하게 돼 상당한 손실이 예상된다. 일본도 반도체 장비 해외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3%나 돼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에 중국은 반도체 장비 자체 개발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을 WTO에 제소한 상황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중국에 대해 반도체 제조장비보다는 주로 칩을 수출하고 있어 당장은 타격이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 제조장비를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 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며, 장기적으로 일본이나 네덜란드보다 더 심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가 제조장비에서 점차 칩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전면 금지되면 심각한 무역적자뿐 아니라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로 금융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521억 달러로 전체 반도체 수출액(1292억 달러)의 40.3%나 되며, 홍콩을 통한 우회 수출(194억 달러)까지 포함할 경우 무려 55.3%에 달한다. 혹자는 칩4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미국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대미 반도체 수출은 81억 달러에 불과하다. 대중국 수출액(우회 수출 포함) 715억 달러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의 수출 1위 품목이자 무역흑자 1위 품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전통 제조업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고 이차전지와 디스플레이 등 첨단 제조업에서도 상당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반도체마저 타격을 입는다면 우리나라 수출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이 우리나라가 바이든 정부의 칩4동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다.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방지법(IRA)으로 인해 우리나라 전기차가 미국 내 경쟁력 약화로 큰 손실을 입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배려는 리스 및 법인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을 주는 정도에 그쳤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미국의 칩4 참여에 대한 요구를 거부하고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지속할 경우, 미국 정부는 한국에 대해 미국산 기술이 포함된 반도체 제조장비 공급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 올해 10월까지 칩4 동맹 참여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인데, 필요하다면 시한을 연장하면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나라가 칩4에 참여하더라도 강한 칩4동맹보다는 ‘느슨한 동맹’ 형태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칩4 참여로 예상되는 손실에 대해 미국에 대해 어떤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인지 구상해야 한다. 일본이나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보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관련 수출 통제에 참여한다고 뚜렷한 반대급부를 제공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경제안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통제 정책은 한국에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조장비에 대한 통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부상)를 둔화시킴으로써 한국의 반도체 우위를 유지하게 하는 반면, 반도체 칩에 대한 통제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을 크게 둔화시킬 수 있다. 중국이 반도체 칩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할 경우 중국 내 제조업이 붕괴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공급망에 심각할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통제정책이 칩보다는 제조장비를 중심으로 실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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