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물가당국이 무능하다고 질타할 일만도 아니다. 물가 급등의 상당 부분이 유가, 곡물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해외발(發) 요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물가를 잡는답시고 당장 눈에 보이는 생활서비스 물가를 직접 통제하려 드는 것이다.
|
이런 대응은 무책임하고 공정하지 못하다. 원부자재 가격이 올라 어쩔 수 없이 오르는 생활서비스 물가를 통제하는 것은 대부분이 자영업자인 생활서비스 공급자만 피해를 보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거 정부들이 그랬다. 물가가 오를라치면 생색용으로 눈에 잘 띄는 외식가격을 통제하곤 했다. 언론도 덩달아 가세해 ‘설렁탕 가격이 얼마가 올랐네’, ‘치킨 가격이 너무 비싸네’ 하면서 바람을 잡았다.
생활서비스 물가 통제의 논리는 간단했다. 국내 물가가 오르면 수출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임금근로자의 삶이 팍팍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내수시장에서 근근이 버티고 사는 자영업자들의 삶의 팍팍함은 안중에 없었다.
한마디로 생활서비스 물가 잡기 대책은 자영업자에게서 기업과 임금근로자에게로 소득과 부를 이전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더욱이 수출의 과실이 내수로 확산하는 낙수효과까지 시들해지면서 이런 효과는 더 심해졌다. 오랫동안 이런 불공정한 정책이 지속하면서 가계보다는 기업으로, 자영업자보다는 정규직 임금소득자로 소득과 부가 쏠렸다.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서비스 물가의 일방적 통제는 소득불균형을 더욱 확대하는 공정하지 못한 정책이다. 정책이 공정하려면 자영업뿐만 아니라 기업과 임금근로자도 물가안정을 위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특히 이번의 물가 대응에서는 기업과 정규직 임금근로자가 더 고통을 분담해야 할 또 하나의 큰 이유가 있다. 바로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에게 진 빚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체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강력한 거리두기 방역대책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에게 큰 신세를 졌다. 아무리 자영업자들이 손실보상금을 받은들 피해를 온전히 보상받을 수는 없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은 크게 줄어든 반면 임금근로자의 임금소득은 오히려 증가해 그렇지 않아도 괴리가 컸던 임금소득자와 비임금소득자 간의 소득불균형은 더욱 심해졌다.
최저임금 급등에 이어 코로나19에 결정타를 맞으며 빈사상태에 있는 자영업이 원자재 가격 급등이라는 또 하나의 핵펀치를 맞아 생사의 기로에 몰리고 있다. 이들에게 원자재 비용 상승의 충격을 알아서 흡수하라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태도다.
그래서 이번 물가 대응에서는 코로나19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받은 기업 부문과 정규직 임금근로자 계층이 앞장서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담당해 줘야 한다. 그래서 자영업자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 그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이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물가상승을 이유로 온전히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는 요구는 너무 이기적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래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은 벌써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고통을 분담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생활서비스 물가가 좀 오르더라도 그것이 관성적으로 임금상승으로 전가돼서는 안된다. 더욱이 공급 발 물가상승이 임금을 자극해 또다시 물가를 올리는 나선효과(spiral effect)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임금상승 억제는 긴요하다.
이번에는 코로나19 충격을 적게 받았거나 오히려 이득을 보았던 기업들과 정규직 임금근로자 계층에서 물가상승의 충격을 주도적으로 흡수해 줘야 한다. 해외발(發) 공급충격을 이들이 분산해 흡수해 줄 때 자영업자들도 숨 쉴 틈을 가지고 생활서비스 물가 안정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불공정과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는 물가정책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