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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업으로 흘러간 유동성 중 상당 부분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금고에 현금으로 쌓여있는 ‘유동성 함정’ 현상과 함께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은 별다른 수혜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기부양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유동성 팽창 주 원인은 기업신용 증가”
11일 한국은행은 ‘2020년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올 상반기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기업대출이 통화증가율 상승세를 이끌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한은과 정부의 확장적 통화·재정정책이 만들어낸 유동성이 기업을 중심으로 흐르면서 경기 위축을 방어하는데 효과를 냈다는 뜻이다.
한은은 6월 기준 가계와 기업을 합한 국내 총신용 증가율은 전년 동월보다 9.2%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기업신용의 기여도가 5.7%포인트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1년 전 같은 달(4.0%포인트)보다 1.3%포인트 확대한 것이다. 가계신용의 기여도는 1.5%포인트, 기타부문은 1.7%포인트로 1년전과 같았다. 국외부문은 1.1%포인트에서 0.3%포인트로 축소했다. 올 상반기중 은행과 비은행을 포괄하는 예금취급기관의 기업신용은 125조2000억원 증가하며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1년 이래 최대로 늘어났다.
이같이 확대 팽창한 신용 증가 등으로 지난해 12월 7.9%였던 M2(광의 통화) 증가율(평잔, 전년동월대비)은 올해 6월 9.9%로 큰 폭 상승했다. M2는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포함한 통화 지표로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한 자금으로, 시중 유동성 상황을 판단하는 통화지표로 활용된다.
한은은 “시중 유동성 증가는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한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대응, 기업 및 가계의 자금 수요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기업에 대규모로 흘러들어간 유동성은 코로나19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인건비, 재료비 등 기업의 영업활동에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위기를 빚으로 버텨냈다는 뜻이다. 상반기 중 증가한 운전자금대출 44조9000억원은 지난 한해 기업 운전자금대출 증가액(13조7000억원)의 세 배를 뛰어넘는 규모다. 시설자금이 지난한 해 8조에서 올 상반기 중 15조3000억원으로 증가한 것과 비교해도 증가세가 크게 두드러진다.
한국은행은 “완화적 통화정책과 정부의 기업자금지원 정책 등으로 늘어난 유동성이 기업을 중심으로 자금이 흐르면서 코로나19 충격을 완화했다”고 평가했다.
◇유동성 팽창에도 경기진작 효과 ‘의문’
하지만 넘쳐나는 유동성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충격을 완화하는데는 역할을 했지만 투자와 소비로 이어져 경기를 부양하는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유동성이 단기상품에만 주로 몰린 탓이다. 또 정작 코로나19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저금리 수혜에서 여전히 소외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를 보면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현금을 틀어쥐고 있으려는 ‘유동성 함정’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상반기 중 증가한 M2 164조9000억원 가운데 사실상 현금과 마찬가지인 수시입출식 예금, 요구불예금 등 M1(협의통화)의 비중이 80.7%를 차지했다. 시중에 풀린 100만원 중 80만원은 투자나 소비에 쓰이지 않고 현금으로 금고에 쌓여 있다는 얘기다.
한은은 “저금리에 따른 중장기성 금융상품의 금리 유인이 약화되고 기업 조달자금이 단기로 운용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M2 대비 M1 비중은 지난해 말 31.8%에서 6월 기준 34.4%로 상승했다.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은 대기업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한은의 은행 대출행태서베이에 따르면 지난 1분기를 0으로 놓고 신용위험 지수를 산출한 결과 대기업은 0에서 지난 2분기 13으로 증가한 반면 중소기업은 26으로 대기업보다 두 배 더 뛰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금융시장 쇼크가 발생했던 3월과 비교해 시장금리도 전반적으로 안정된 가운데 저신용 회사채는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한은은 “최근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시중 유동성이 단기화 특성을 보여 자산시장으로의 쏠림 가능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비우량기업 및 중소기업 등에 대한 신용경계감이 지속되고 있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