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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불거진 미국의 실패…노조 재결집 계기되나

장영락 기자I 2020.05.01 06:00:00

코로나19 확산으로 작업 현장 곳곳 공황
직장 위기에 노동조합 재결집
안전, 급여 보장 등 목소리 높여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대한민국 경제활동인구 2700만명 가운데 2000만명 가까이 되는 임금 근로자, 즉 노동자들에게 오늘 노동절(May Day)은 즐거운 하루다. 사업장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어쨌든 이들 중 상당수는 하루 휴식일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이데이의 기원이 된 나라가 미국이었고, 이곳에서 과거 산업 사회 역사상 가장 전투적인 노동운동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 세가 확연히 줄어들긴 했지만, 코로나 확산 사태를 맞아 미국의 노동계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다. 특히 보건 분야 노동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안일하고 무능한 감염병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2일 뉴욕 몬테피오리 병원의 간호사들이 개인보호장구 확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
◇미국 의료의 실패, 피해는 현장 의료인들에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미국 의료체계는 무기력했다.

공공보험이 따로 없고 의료공급자들의 영리 추구 행위에 종속된 미국 특유의 의료 시스템은 전염력 강한 감염병 앞에서 약점을 노출했다. 뉴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거대기업 체인형태로 운영되는 일부 병원들은 평소 경비 절감 차원에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의 개인보호장구(PPE) 비축을 최소화 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전역에 15만명의 노조원을 둔 최대 보건노조 전국간호사연합(NNU)는 이달 들어 곳곳에서 정부 대응 정책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동료 의료인 40여명을 추모하는 집회를 열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의료진이 1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사망자도 속출하면서 미국 의료 현장은 가히 패닉(혼란)에 빠진 상황이라 할 만하다. 같은달 29일에는 캔자스시티의 한 병원에서 40년 근속을 마치고 은퇴를 앞둔 69세의 베테랑 간호사가 병원의 PPE 부족으로 고생하던 끝에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NNU는 코로나 확산 와중에도 안일한 태도와 무성의한 대응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은 괜찮아질 것”이라며 사태 초기 적극적인 전염병 봉쇄 시점을 놓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본격적인 비상체제로 돌입된 이후에도 국방물자법(DPA) 발동을 머뭇거려 미국 전역 병원이 가운, 마스크, 산소호흡기 등 각종 의료장비 부족에 시달리도록 했다. 마스크 수급 차질이 빚어지자 전체 물량의 수출을 금지하고 대책본부를 마련해 증산, 5부제 시행을 진행한 한국과 크게 대조된다.

◇경제 재개 원하는 기업·주정부, 반대하는 노동자들

경제활동 재개를 원하는 기업 및 주정부와 안전을 이유로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대립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캐롤린 굿맨 시장은 수익 악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주 카지노 등을 재개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제기했다. 그러나 지역 노조들은 “라스베이거스는 실험용 접시가 아니다”라며 시장 주장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감염세가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카지노 등 관광 시설이 문을 다시 열면 직원들이 가장 먼저 감염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롱크스 제이코비 메디컬 센터의 간호사들이 병원의 새로운 병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역 병원들은 최근 간호사들이 병가를 원할 경우 의사 소견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정책을 바꿨다. 사진=AFP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 역시 직원들 반발에 부딪혔다. 이달 초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에 있는 아마존 물류창고 직원 100여명이 작업 환경 안전보장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식품구매 대행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인 인스타카트의 계약직원 20만명도 접촉에 따른 안전 위험을 이유로 파업에 들어갔다.

식료품점 점원 등 대면 업무로 감염위험에 처한 노동자들 역시 작업환경 안전을 요구하며 기업과 대립하고 있다.

130만명의 노동자가 가입한 국제식품상점노조연합(UFCW)은 테스코 월마트 등 유명 상점 체인에서 일하는 최소 3000명 이상의 식료품업 노동자들이 근무 중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최소 30명은 사망했다는 것이 노조 주장이다.

노조는 정부의 성급한 결정으로 감염사태가 더욱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미국 양대 교직원 노조인 미국교사연맹(AFT, 노조원 170만명)과 미국교육협회(NEA, 노조원 290만명)는 공히 정부의 섣부른 개학조치에 반대한다며 주정부들이 함부로 개학을 강행할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75년만의 총파업 나올지도”

코로나19가 미국 전역 일터에 가져온 위협은 노조운동의 재결집을 촉발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국적인 파업, 집회 분위기가 퍼지고 있고 아마존, 홀푸즈, 제너럴일렉트릭과 같은 거대기업의 유력 노조가 기업을 상대로 한 보이콧을 주도하고 있다. 일부 매체들은 “미국에서 75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췄던 총파업의 기운이 감돈다”는 소식도 전하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액시오스는 “코로나가 노동 현장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마주치는 건강·보건 이슈를 고용주들에게 알리기 위해 더욱 결집하고 있다”고 전했다.

매체는 “소셜미디어 발달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노동자들의 각성으로 미국의 노동운동에는 새로운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임금 근로자 가운데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는 1400만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노조가입률은 10.3%로, 20%를 넘던 1983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공공부문을 제외한 민간부문으로 한정하면 가입률은 7%에 그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전국적인 작업환경의 위기는 미국의 노동조합 운동에 새로운 계기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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