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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굵고 가는 선과 면이 화면에 빼곡하다. 진하고 연한 명도의 차이만 있을 뿐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거뭇한’ 붓밭이다. 마치 동양화의 수묵담채인 양, 먹으로 채운 화선지인 양, 번지고 흘린 흑백 선들이 배경을 다듬고 가지를 쳤다.
작가 박광수(35)는 검은 선을 촘촘히 들인 단단한 추상화면으로 주목을 받는다. 풍경과 인물의 경계를 무너뜨려 모호한 세상풍경을 빚어놓는데. 아크릴물감만으로 토막 낸 선의 명도차를 최대한 끌어올려 깊이를 만들고 몽환적 분위기까지 넘보는 방식이다. 이 작업을 두고 작가는 “어두운 숲 속을 더듬어 가는 길 같다”고 말한다. 의식 너머에 숨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란 거다.
‘깊이-먼 산’(2019)이 그중 한 점. 사각막대와 마름모, 휜선과 곡선, 십자로 그은 선과 사선으로 그은 선 등으로 정작 세상에는 없을 산을 세우고 숲을 가꿨다. “어중간하고 두루뭉술한 형상으로 시각세계에 드러나지 않을, 공기 같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니, 제대로 해낸 셈이다.
1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영영 없으리’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아크릴. 116.8×80.3㎝. 작가 소장. 학고재갤러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