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7일 대한항공(003490)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로 인해 대표이사직을 상실했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지난해 7월 도입된 이후 대기업 총수를 끌어내린 첫 사례다. 이튿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020560) 등 주요 계열사 주총을 앞두고 경영권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사태 이후 여론 악화에 따른 부담이 퇴진으로 이어졌다.
기업인들의 수난은 항공업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반기업적인 정부 정책은 기업인들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친노 정책이 잇따르면서 경영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기업을 더욱 옥죄는 법안도 국회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특히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임, 전자투표제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많은 기업의 경영권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먹잇감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반기업 정책은 반기업 정서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일부 기업인들의 일탈이 더해지면서 전체 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는 풍조가 만연하다. 이러한 여론은 다시 반기업 정책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국민연금이 그의 연임을 반대한 것은 조 회장 일가에 대한 국민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반기업 정서를 등에 업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은 부산공장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출 물량을 해외 공장에 뺏길 위기 속에서도 임금을 올려달라며 파업을 지속하고 있고, 현대중공업(009540)과 대우조선해양(042660)의 합병은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혀 난항이다.
이처럼 경영 환경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정부는 틈만 나면 고용과 투자를 확대라라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각종 국가 행사에 기업들의 지원을 요구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업의 투자를 종용하며, 정치인들이 기업인들을 국회로 불러 호통을 치는 일도 예사다.
재계 관계자는 “이런 환경에서 경영을 하느니 차라리 폐업을 하거나 외국으로 회사를 옮기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기업을 제쳐놓고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것을 설명할 수 없는데도, 정책과 여론이 반기업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