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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집을 떠난 지 15년이 지나서야 노라는 아직 자신이 결혼한 상태라는 걸 알게 된다. 얼마나 당황했겠나.”(서이숙) “15년 동안 남편 토르발트도 힘들었을 거다. 체면 때문에 아내가 떠났다는 말도 주변에 못했을 테니까.”(손종학)
1879년 초연한 헨릭 입센의 연극 ‘인형의 집’은 주인공 노라가 자아를 찾기 위해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집을 떠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결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인형의 집’이 재창조됐다. 집을 떠났던 노라가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연극 ‘인형의 집, 파트2’(4월 10~28일 LG아트센터)다.
이 작품은 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가 썼다. 2017년 브로드웨이 존 고든 씨어터에서 초연에 올라 그해 브로드웨이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토니상에서 작품상·연출상·여우주연상·남우주연상·의상상 등 8개 부문을 석권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는 초연이다. 배우 손종학·박호산, 서이숙·우미화가 각각 노라와 토르발트 역에 더블 캐스팅돼 공연을 준비 중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배우들은 고전으로 남은 ‘인형의 집’의 다음 이야기라는 점에 관심이 갔다고 입을 모았다. 서이숙은 “‘인형의 집’의 노라 역 제안이 들어와서 놀랐다”며 “알고 보니 15년 뒤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궁금증이 생겼고 희곡을 읽어보니 역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우미화도 “집을 나간 노라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설정 자체가 흥미로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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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못지않은 ‘어른들의 성장드라마’
노라는 왜 15년 뒤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일까. 작품은 가출 이후 여성과 사회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로 성공한 노라가 자신이 아직 이혼하지 않은 상태임을 알게 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세상 속에서 노라의 생각은 진취적으로 변했지만 집에 남은 남편 토르발트와 유모 앤 마리는 여전히 예전의 가치관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 여기에 딸 에미와의 갈등까지 더해져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간다.
주제는 ‘인형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 제도와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점이 그렇다. 배우들도 작품을 접한 뒤 이러한 점에 놀랐다. 서이숙은 “우리보다 개방적으로 여겨지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박호산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평등해질 때까지 이런 이야기는 계속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형의 집, 파트2’는 ‘소통’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사실이다. 각자 다른 입장의 네 인물의 대화를 소통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우미화는 “이 작품에는 교화될 사람이 하나도 없다”며 “인물들의 입장에서 이들의 주장이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종학은 “공연을 보고 나면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야 더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인형의 집, 파트2’를 “어른의 성장드라마”라고 말한다. 손종학은 “연습을 하는데 김민정 연출이 ‘이건 어른의 성장드라마네요’라고 했다”며 “15년이 지났음에도 노라가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그렇다”고 말했다. 서이숙은 “15년간 겨우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 노라가 딸과의 논쟁에서 다시 한 번 뼈아픈 진실을 직시하게 된다는 점이 관객에게도 많은 생각할 점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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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재미 담은 블랙코미디”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불리는 ‘인형의 집’을 재창작한 만큼 다소 지루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여백이 많은 무대 위에서 인물들의 대화와 논쟁만으로 극을 전개한다는 점도 그렇다. 그러나 배우들은 “관객들은 오히려 박장대소할 블랙코미디”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호산은 “‘내로남불’이라는 말처럼 관객은 오히려 불구경을 하듯 노라와 토르발트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대사의 맛도 있어 듣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4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4개의 조합으로 무대에 올라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박호산은 “이 작품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다른 어떤 도구도 없이 오직 대화로만 스펙터클을 만들어내야 해서 배우들의 호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이숙은 “함께 하는 배우들이 아집 없이 서로 맞춰주고 있어 연습 과정 자체가 행복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