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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10년 세월이 흐른 2019년 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로 기업인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4대 그룹 총수와 따로 산책을 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요즘 반도체 경기가 안 좋다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이재용 부회장은 “좋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거죠”라고 답했다. 10년 전 위기를 극복한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이었다. 옆에서 함께 걷던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은 “삼성이 이런 소리하는게 제일 무섭습니다”라며 삼성의 ‘진짜 실력’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SK그룹도 2012년 SK하이닉스(000660)를 인수해 반도체를 핵심 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이어 “반도체 시장 자체가 안 좋은 게 아니라 가격이 내려가서 생기는 현상으로 보시면 됩니다. 반도체 수요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가격이 좋았던 시절이 이제 조정을 받는 겁니다”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이재용 부회장이 말한 진짜 실력은 삼성전자가 위기를 기회로 만든 원동력인 ‘초(超)격차’ 전략을 뜻한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메모리 분야에서 차세대는 물론 차차세대까지 앞서 개발하는 초격차 전략을 통해 단숨에 위기를 극복했다. 2017년엔 미국 인텔을 누르고 반도체 왕좌에 올랐고, 2018년 3분기엔 영업이익이 17조 5700억원(반도체 13조 56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작년 한해 영업이익은 59조원에 달해 인구 1000만명의 서울시가 1년 7개월 간 쓸 수 있는 예산(연간 36조원)과 맞먹는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부터 삼성전자의 실적을 견인해 온 D램 등 메모리 가격이 불과 석 달 새 10% 이상 하락하고 서버용 제품 수요도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얼마 전 공개한 4분기 잠정 영업이익(10조 8000억원)은 시장 예상치에 크게 못 미쳐 전분기 대비 40% 가까이 급감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새해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세대 10나노(1z)급 D램과 6세대 120단 3D V낸드를 선보이며 메모리 초격차를 이어갈 전망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스템 반도체 등 비(非)메모리 분야로 초격차 전략을 확대해 위기를 돌파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파운드리의 초격차 기술로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적용한 EUV(극자외선)는 10나노(nm·10억분의 1m) 미만 반도체 미세 공정에서 비장의 무기로 꼽힌다. 이 부회장은 6조원을 투입한 화성 EUV개발라인을 지난해 8월 직접 방문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술 초격차’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삼성전자는 EUV를 적용해 올해 세계 첫 5·6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선보일 계획이다. 대만 TSMC가 50% 이상을 점한 파운드리 분야는 2020년 글로벌시장 규모(IHS마킷 자료)가 766억 달러(약 8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개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 인공지능(AI)의 핵심 기술인 ‘딥러닝’에 최적화 한 시스템 반도체 NPU(신경망 프로세서)와도 맥이 닿아있다. 여기에 메모리 분야에서도 10나노 미만까지 초격차를 이어갈 차세대 기술이란 평가다.
국내 EUV 최고 권위자인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삼성이 EUV를 도입한 것은 메모리 중심에서 탈피해서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라며 “EUV에 대한 자신감이 선제 투자로 이어졌고 파운드리 1위 TSMC보다 먼저 기술을 선점해서 시장 판도를 바꿔보겠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 산책을 마치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우리는 비메모리 반도체 쪽으로 진출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결국 집중과 선택의 문제입니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죠”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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