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박 9일에 걸친 유럽 순방을 마치고 어제 귀국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교황청을 방문했고 벨기에에서 열린 아셈(ASEM)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일정으로 이어진 순방이었다. 그제는 코펜하겐까지 방문해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와의 정상회담도 가졌다. 이번 순방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냄으로써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 정착을 실현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산하려는 일정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관련해 대북제재 완화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비핵화를 진척시키면 제재완화가 필요하다”는 언급이 그것이다. 문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와의 잇단 정상회담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북한이 이미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한 데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고 동창리 및 영변 핵시설까지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그에 대한 상응조치가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마크롱 대통령과 메이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는 물론 아셈 의장 성명에서도 참가국 정상들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및 관련 프로그램과 시설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폐기(CVID)할 것”을 촉구했다. 경제제재 완화는 어디까지나 그 다음에 고려할 문제라는 얘기다. 결국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 수락이 문 대통령의 이번 유럽 순방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려면 비핵화 조치에 따라 단계별로 대북제재도 해제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북한의 진정성이 문제다. 북한이 지금껏 여러 차례나 약속을 어겼기에 국제사회가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를 먼저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꾸 북한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주장을 내세운다면 국제 공조가 흔들릴 수 있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남북관계를 우리 나름대로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는 나무랄 데 없지만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크게 벗어나서도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