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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여의도 한강공원과 마주보고 있는 한 아파트 상가에서 만난 임모씨는 쥐 얘기를 꺼내자 한숨부터 쉬었다. 임씨는 “해마다 쥐떼가 출몰하긴 했지만 올해는 쥐들이 부쩍 늘어 동네 주민들끼리 얘기를 많이 나눈다”며 “약도 놓고 보건 당국에도 얘기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인근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들이 때 아닌 쥐 포비아(Phobia·공포증)에 떨고 있다. 올 여름 국내를 강타한 불볕더위에 한강공원에서 기승을 부리던 쥐떼들이 추워진 날씨에 한강변을 벗어나 도로 건너 아파트 단지로 넘어온 탓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날이 더 추워지면 쥐들이 아파트 단지로 더 많이 넘어오지 않겠냐”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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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 따르면 매년 7000만명(누적기준)이 넘는 시민들이 한강공원을 찾는다. 지난 7일 찾은 여의도 한강공원은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도 소풍 온 시민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공원에 도착하니 돗자리나 텐트를 펴고 배달 음식을 시켜먹거나 편의점 등에서 음식을 사 먹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음식물쓰레기는 음식물 수거함에 넣어주세요’라는 현수막이 무색하게 쓰레기통에 음식 상자를 통째로 버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보건당국은 한강공원에 서식하는 쥐 개체 수가 급증한데는 시민의식 부족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강공원을 찾는 시민들이 남기고 간 음식물 쓰레기가 쥐 서식에 좋은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불볕 더위가 막을 내리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한강공원에 있던 쥐들이 인근 아파트 단지로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강공원 바로 앞 아파트 담벼락 주변에는 ‘쥐구멍’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민들은 겨울에 쥐들이 본격적으로 아파트 단지로 넘어올 것을 걱정하고 있다. 한강공원 맞은 편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모(56)씨는 “어제도 아파트 옆 텃밭 구덩이에 쥐가 죽어 있는 것을 봤다. 담벼락 밑 쥐구멍을 경비원에게 알려주기도 했다”며 “천장에 쥐가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웃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 경비원은 “봄부터 한강 야시장같이 먹거리가 많은 행사가 끊이지 않은 영향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며 “이런 환경에서는 새로 지은 아파트라도 쥐가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공원 인근 아파트들 “서울시와 지자체가 쥐 없애달라”
한강공원 인근 아파트 단지들은 전문업체에 해충방제를 맡기는 한편 쥐가 다니는 길에 쥐약과 쥐덫 등을 놓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A아파트 관계자는 “올여름 관련 부처에 민원 공문을 보냈을 때 시에서 노점을 단속해 좀 나아졌지만 그때 뿐이었다”며 “쥐가 더 늘지 않도록 서울시에서 쓰레기만이라도 제대로 처리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B아파트 관계자도 “가을 들어 아파트에서 쥐를 봤다는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린다”며 “해충방제업체로부터 쥐약을 받아 길에 뿌리고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 외부에서 넘어오는 쥐 전부를 막을 수는 없다. 서울시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나오는 쓰레기 분리·배출 시설을 확충해 쥐 번식을 미연에 막겠다는 입장이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여의도 한강공원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15개에서 50개로 확대설치했고 내년에는 액체가 바닥에 스며드는 것을 막는 적재함 형태의 쓰레기함으로 바꿀 예정”이라며 “민원이 더 들어올 경우 청소용역업체를 통해 조치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약품과 방비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영등포구보건소 감염관리팀 관계자는 “올해 6월부터 현재까지 한강공원을 방문해 열두 번 이상 방역했지만 한강 공원이 워낙 넓어 어려움이 있다”며 “인근 아파트 민원을 고려해 쥐구멍에 약품과 쥐덫을 놓고 겨울을 앞두고 방비작업에도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