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시험지 유출 걸려도 솜방망이 처벌…"열공한 학생만 억울해요"

최정훈 기자I 2018.09.27 04:00:00

최근 5년간 시험지 유출 13건..작년이후 7건 몰려
교육시스템 신뢰 훼손 불구, 형사처벌 쉽지 않아
학생·학부모 "성실한 학생만 손해, 엄벌해 근절해야"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숙명여자고등학교 앞에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경찰은 이날 시험문제 유출 의혹과 관련 이 학교 교장실과 교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최근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의 시험지 유출 의혹을 비롯해 전국에서 시험지 유출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분노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시험지 유출 범죄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중대 범죄라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시험지 유출을 처벌할 수 있는 명확한 법 조항이 없어 형사처벌 없이 학생은 퇴학, 교사는 해임이나 감봉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처벌 강화와 함께 시험지 유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험지 유출 사건은 매년 증가세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올해 1학기까지 발생한 시험지 유출 사건은 총 13건으로 나타났다. 이중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 발생한 사건이 총 7건으로 절반이 넘는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숙명여고와 학원 등을 압수수색하고 전임 교무부장과 전임 교장 등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에는 광주지검이 광주 D고교 행정실장 A(58)씨와 학부모 B(52·여)씨를 시험지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시험지 유출 사고 관련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시험지 유출은 학교행정은 물론 교육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는 만큼 엄벌해 재발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는 김모(18)양은 “좋은 성적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 애들만 바보가 되는 것 같다”며 “성실한 학생들이 억울하지 않게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최모(48·여)씨는 “이런 사건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교육 당국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관련자들을 엄벌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고교 시험지 유출 등 시험부정 관련 현황 (자료=박찬대의원)
그러나 시험지 유출 범죄는 형사처벌조차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시험지 유출 범죄는 결국 학교장이나 교 육당국의 업무를 방해한 업무방해 혐의 정도”라며 “시험지 원본을 가져가면 절도 혐의도 적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 복사해 가거나 베껴 가기 때문에 원본 유출은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업무 방해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대부분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험지 유출은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교육 시스템 자체에 불신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엄중한 범죄”라며 “해당 범죄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이 극에 달한 만큼 시험지 유출을 세밀하게 규정해서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험지 유출 사고의 근본 원인이 과열된 입시 경쟁에서 발생하는 것인 만큼 이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과 시험지유출 사고가 주로 발생하는 사립학교의 학교행정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와 올해 시험지 유출 사건이 발생한 7개 학교 중 5곳이 사립학교다. 학교 교무부장의 시험지 유출 의혹을 받는 숙명여고도 사립학교다.

김동국 전교조 사립위원장은 “시험지 유출은 입시 경쟁의 과열이 주요 원인이다 보니 처벌을 강화해도 입시 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없으면 시험지 유출은 또 일어날 것”이라며 “경쟁이 치열하고 폐쇄적인 사립학교일수록 시험지 유출사고에 더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사립학교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과 학생부 교과 전형의 확충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