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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정모(27)씨는 “성중립화장실이라는 것을 이 축제에 와서 처음 봤다”며 “이를 통해 성소수자들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이용하는 화장실도 고민하고 사용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성소수자와 인권단체들은 성중립화장실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성중립화장실이란 성별이나 장애 유무의 구별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1인용 화장실을 말한다. 하지만 몰래카메라 등 범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비용문제 등 사회적 통념상 성중립화장실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성중립 화장실은 남자용 소변기를 따로 설치하지 않고 양변기와 세면대만 설치해 화장실의 성별 구분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성중립화장실, 성수소자 인권보호 상징적 의미”
성중립화장실은 2010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CSU 롱비치) 화장실에서 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한 뒤 성중립화장실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2015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로 백악관 내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부터 모든 공공건물에 성중립화장실 설치를 의무화했다.
해외에서는 사회적 논의 등을 거쳐 성중립화장실 도입을 확산하고 있다. 스웨덴이나 캐나다에서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늘리고 있다. 일본은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비해 공공시설 등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성중립화장실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민석 인권재단 사람 사무처장은 “성소수자들은 화장실 이용과 같은 일상적이면서 생존과 직결되는 부분에서부터 고통받고 있다”며 “실제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은 공중화장실 내에서 당하는 폭력이 두려워 집 화장실만 이용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 때문에 만성적으로 방광염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이어 “성중립화장실은 기능적으로는 일반 화장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수 있지만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에서 성중립화장실을 도입한 곳은 ‘인권재단 사람’과 ‘한국다양성연구소’ 등 소수 인권단체에 그치고 있다. 국내 대학 중 성공회대에서 최초로 성중립화장실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반발이 만만찮아 설치 여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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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립화장실 도입이 우범지대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성중립화장실이 남녀 구분이 없는데다 폐쇄된 공간인 만큼 몰래카메라나 성범죄 등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몰카 범죄 발생 건수가 지난 2012년 2400건에서 2017년 6470건으로 약 3배 늘었다.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화장실이 남녀로 구분돼 있으면 범인이 몰래카메라를 가지고 여성 화장실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며 “하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그 공간이 폐쇄적이라면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성중립 화장실이 오히려 성소수자의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했던 최모(31·여)씨는 “퀴어축제에서는 성적 정체성에 관계없이 모두가 성중립화장실을 이용해 문제가 없지만 다른 장소에서 성중립 화장실을 이용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중립화장실 도입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게 최우선시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승하 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서울시가 추진했던 성중립화장실 도입 계획이 진전되지 못한 이유는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시민들의 반발한 영향이 크다”며 “시민들에게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뒤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 연구소 소장은 “서울시 등 일부 공공기관에서 시범운영을 통해 도입 필요성을 가늠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성중립화장실이 만들어지면 성소수자뿐 아니라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장애인, 자식과 동행해야 하는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