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논란확산]삼성證 유령주식, 무차입거래 가능성에 폭발한 개미들

박형수 기자I 2018.04.10 04:00:00

오랜 투자 경험에서 공매도 피해 기억만 남아
외국인·기관 대비 개인 공매도 쉽지 않은 것도 부정적 인식 심어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 기자실에서 삼성증권 배당착오사태 공식 브리핑을 하던 중 코를 매만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박형수 기자] 2008년 10월1일.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전 세계 금융위기가 고조되던 2008년 국내 증시도 연일 하락했다. 외국인은 증시 하락을 틈타 공매도를 늘렸다. 국내 투자자를 중심으로 외국인의 공매도가 과도한 주가 하락을 부추기고 증시 변동성을 확대한다는 비난이 일었다. 금융감독원은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등과 함께 공매도 실태 조사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그 해 10월 1일부터 주식 공매도를 금지했다. 이듬해 6월 금융주를 제외한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다시 허용했다.

2013년 4월16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보유 지분을 모두 다국적 기업에 매각하겠다”며 폭탄선언을 했다. 서 회장은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고 있지만 불법적인 공매도 세력이 각종 루머를 퍼트리고 주가 하락을 유도하는 데도 감독 당국의 대응이 미흡하다며 경영권 매각 이유를 밝혔다. 서회장은 “불법적인 공매도가 지난 2년 내내 이어졌다”며 “감독 당국이 나서주길 바라며 불법적인 공매도에 대한 제지 요구를 1년 전에 했고 6개월 전에도 했지만 답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보도 공개되지 않고 무한한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공매도 세력을 기업의 노력만으로 막을 수 없다”며 “당국의 방치 속에 꿈을 접게 됐다”고 말했다. 셀트리온 주주는 서 회장의 폭탄선언에 동조했고 공매도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안좋아졌다.

2016년 9월30일.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사와 체결했던 내성표적폐암신약 기술이전 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했다. 계약해지 공시가 나온 시점을 전후해 한미약품 공매도 물량이 급증했다. 계약 해지라는 악재로 한미약품이 주가가 급락한 사이 공매도 투자자는 적지 않은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지며 투자자의 공분을 샀다.

◇공매도 세력 탓에 손실 키워…개인 투자자 오랜 인식

오랜 기간 주식을 투자한 사람일수록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적지 않은 개인 투자자가 지난 6일 삼성증권 유령주 배당 사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매도 전면 금지를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발행되지 않은 삼성증권 유령 주식 500만주 가량이 시장에 풀렸다. 현행법으로 금지한 무차입 공매도가 증권사 전산 조작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은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공매도 폐지’ 관련 청원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참여 인원이 20만명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청와대가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매도 폐지 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엔씨소프트가 신규 모바일 게임 ‘리니지M’ 출시를 앞두고 주가가 강한 상승 흐름을 보이다 게임 내 아이템 거래소 기능이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급락했다. 일부 경영진이 출시 직후 주식을 매각해 급락에 따른 손실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공매도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정보 비대칭성이 여전한 가운데 외국인과 기관에 비해 개인은 공매도가 자유롭지 못하니 공매도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매년 반복되는 공매도 논란에도 감독 당국은 공매도 제도를 폐지했을 때 외국인 투자자 이탈을 우려하며 공매도 규제 강화로 일관하고 있다. 외국인을 비롯해 기관 투자가는 높은 수익률보다 안정적으로 벤치마크(BM) 지수 대비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주가가 하락해도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공매도 투자를 필요로 한다. 헤지 수단인 공매도가 없는 자본시장에 대해선 투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아무리 성장성 좋은 시장이라고 해도 헤지 수단이 없으면 운용자금 가운데 일부만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개인에게 높은 공매도 문턱…주가 하락 땐 손해 안보는 것만으로도 다행?

기관 투자가에게 유용한 공매도를 금융 당국이 개인에게 문턱을 높인 이유는 공매도 이후 주가가 급등했을 때 손실 한도가 없기 때문이다. A사 주식 100주를 빌려 미리 팔아서 손에 쥔 돈이 1만원이라고 하면 공매도 투자를 성공하려면 1만원 미만으로 다시 A사 주식 100주를 사야 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주가가 급등하면 100주를 사기 위한 비용은 2만원, 3만원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급등 행진이 이어지며 주식을 사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실제 지난 2000년 3월29일 우풍상호신용금고는 코스닥 상장사 성도ENG 주식 35만여주를 공매도했다. 주가 하락을 기대하며 공매도에 나섰지만 성도ENG 주가는 오히려 급등했다. 우풍상호신용금고는 4월4일까지 공매도한 주식 가운데 약 15만주를 매입하지 못했다.

개인 투자자가 받아들이기에 기관은 주가가 하락해도 헤지 수단이 있는 데 개인은 주가가 하락하면 고스란히 손실을 봐야 하는 구조가 불합리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전업 투자자는 “중국 사드 사태와 같이 주가 하락을 예견할 수 있는 시기에 개인은 주식을 팔아서 현금 비중을 높이는 것 외에는 운용 수단이 없다”며 “외국인과 기관은 공매도로 수익을 낼 수 있으니 자본시장 자체가 불공평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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