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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었다고… 朴정부 정책 지원 은행상품 ‘찬밥 신세’

전재욱 기자I 2017.11.20 05:30:00

‘창조경제’정책 지원한 국민銀 상품
2014년 출시 이후 실적 내리막길
‘통일대박론’ 뒷받침한 기업·농협통장
국정농단사태·대선 이후 판매중단
“일회성 관치금융 상품, 자제해야”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 정부 색깔 지우기에 나선 가운데 은행권도 박근혜 정부 시절 정책을 지원하고자 내놓은 금융상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상품의 취지도 좋고 한때 가입자도 많이 끌어모았지만 정권 교체로 인해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기 어렵고 가입자가 있어 없앨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형식적인 금융상품이 결국은 관치금융의 일부라며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익 목적·높은 금리에도 실적↓

19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14년 출시한 ‘KB창조금융예금’ 판매 실적은 잔액기준 2015년 말 2조9994억원(19만5233좌)에서 지난해 말 1조7714억원(11만1633좌), 올해(이하 10월 말) 505억원(3990좌)으로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같은 해에 같은 이름을 달고 나온 ‘KB창조금융적금’도 2015년 말 1332억원(8만7338좌), 작년 말 1561억원(8만4994좌), 올해 773억원(2만8561좌)으로 감소 추세다.

예금은 공익적인 목적을 띠고 있고, 적금은 금리가 매력적인데도 고객 반응은 시큰둥하다. 예금은 기본금리 연 1.20%(12개월 기준)의 금리를 제공하고, 은행이 고객의 만기이자 1% 만큼을 부담해서 사회적 기업에 기부한다. 실제로 이 예금에서 조성한 기금 1억원이 지난해와 올해 각각 사회적 기업 모두 8곳이 지원을 받았다. 적금은 기본금리 연 1.7%(36개월 만기 기준)에 우대금리 조건을 모두 채우면 연 최고 2.9% 금리를 받는다. 국민은행 적금 상품 총 29개 가운데 5번째로 금리가 높다.

박근혜 정부 정책 지원 상품 탓에 실적이 부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은 예금을 ‘창조경제 구현 정책과제 지원을 위해’ 마련했다고 상품 설명에서 밝히고 있다. ‘창조경제타운’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한 고객은 0.1% 포인트 금리를 우대하는 조건을 달아뒀다. 적금은 더 적극적인 유인책을 쓰고 있다. 창조경제 타운 홈페이지에 △회원가입 (연 0.3% 포인트) △창조아이디어 등록(연 0.2% 포인트) △우수아이디어 채택(연 0.5% 포인트) 등 최대 1.2%포인트 금리를 우대한다.

타운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을 지원하고자 미래창조과학부가 2013년 7월 설치한 곳이다. 지금도 우수한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전문가 상담, 연구개발, 생산·판매·홍보 등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창조경제’ 간판을 달고 있어서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는 등 박근혜 정부 색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아무래도 금리가 더 나은 신상품이 계속 나오고 있는 탓에 실적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전 정부와 관련한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기는 현 정부 눈치가 보일 것”이라며 “정권교체 첫해인 점을 고려하면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거쳐 간 비슷한 사례

다른 시중은행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통일 대박론’을 뒷받침하려던 것이 대표적이다.

IBK기업은행은 2015년 2월 선보인 ‘IBK통일대박기원통장’ 판매를 지난 5월부로 중단했다. 이 상품은 ‘통일친화적 사회 분위기 조성 및 정부 정책 부응’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실적(누적 기준)은 2015년 2872억원(8957좌), 2016년 3209억원(6365좌), 올해 3043억원(5393좌)로 꾸준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통장을 통해 조성한 기부금 영수증 발급에 대한 고객 민원을 해결할 수 없어서 판매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2014년 9월 나온 NH농협은행의 ‘NH통일대박 정기예금·적금’은 지난해 10월 판매가 끊겼다. 작년 10월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시점이었다. ‘통일시대 범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해 만든 이 상품의 실적은 2014년 180억2000만원, 2015년 300억400만원, 2016년 225억7700만원이었다. 농협은행은 “상품 수익성과 관리 효율을 높이고자 판매를 중단했다”고 설명했지만 최순실 사태를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이 상당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상품을 두고서도 유사한 지적이 뒤따른다. ISA는 지난해 3월 예·적금, 펀드를 한 곳에 담을 수 있는 만능통장으로 출시됐다. 그러나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34개 금융회사에 개설된 ISA 계좌 221만개(지난 7월 기준) 가운데 잔액 10만원 미만인 이른바 ‘깡통 계좌’는 160만개로 전체의 72%였다. 신한·하나·우리·국민·기업·농협 등 6개 시중은행 개설 계좌는 전체의 84%(186만개)였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SA는 은행이 나서 정책을 띄워 준 대표적인 사례”라며 “금융 당국이 은행권에 상품을 바라는 것도, 은행권이 일회성으로 관련 상품을 출시하는 것은 관치 금융의 일종이라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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