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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희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원장] 중국 송나라 시대 불서(佛書)인 ‘벽암록’에는 ‘줄탁동기’라는 말이 나온다. ‘줄’은 알 속의 병아리가 부리로 알 껍질을 쪼는 것, ‘탁’은 어미닭이 밖에서 껍질을 깨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함께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환경산업이 해외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줄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환경산업 시장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신흥국가를 중심으로 한 환경시장은 7% 이상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그러나 세계 환경산업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1%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내 환경시장은 상하수도 보급률이 90%를 넘어서는 등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해외 진출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환경산업 진출의 주요 공략지역인 개도국 시장은 선진국의 고급 기술력과 중국 등의 저가 마케팅 공세로 수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환경기업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해외진출을 위해 각개 전투를 벌이고 있고, 심지어 국내 기업 간 출혈 경쟁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양상으로는 치열한 글로벌 수주전에서 우리나라가 승산을 잡기 어렵다.
세계 환경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부 간 협력으로 이루어진 선단형 구조의 컨소시엄이 필요한 시기다. 대기업은 네트워크나 마케팅 노하우, 자금이 풍부하지만 해외 발주처가 필요로 하는 환경기술을 모두 개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에 반해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나 마케팅 노하우, 자금은 부족하지만, 우수한 환경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에서 프로젝트 발굴 및 마케팅, 자금을 지원하고, 중소 환경기업이 핵심 환경기술 개발 및 현지화 방안을 모색하는 방식의 동반진출은 해외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승리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의 교두보 역할도 중요하다. 해외 환경시장의 대형 프로젝트는 주로 개발도상국의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경산업 시장은 시장 주도가 아닌 정부 주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주요 발주처와 고위급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환경협력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부-대기업-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팀워크가 환경시장 진출의 핵심 경쟁력인 셈이다.
이에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해외 프로젝트 사업의 발굴-개발-투자-사업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단계별로 지원하며, 대·중소기업의 동반진출을 이끌고 있다. 마스터플랜 수립사업, 타당성 조사사업, 투자개발형 사업화지원사업을 통해 2007년부터 현재까지 총 113개 사업에서 대·중소기업의 동반진출이 이루어졌다. 알제리 엘하라쉬 하천정비 사업 수주도 그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한강처럼 알제리 수도인 알제를 관통하는 엘하라쉬강은 쓰레기와 폐수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죽음의 강’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엘하라쉬강을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알제리 정부와 MOU를 체결하고 엘하라쉬 하천 복원 마스터플랜 수립사업을 지원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당 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계약체결 협상 과정에서 현장 밀착 수주지원을 했다. 대기업과 우수 중소·중견기업이 컨소시엄을 이루었으며, 풍부한 현지 사업경험, 해당 분야 기술력 등을 앞세워 마침내 5,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년 뒤 1,000억원 규모의 알제리 콘스탄틴 지역 하천정비 사업도 추가로 수주하는 성과까지 거두었다. 정부·대기업·중소기업의 삼각협업이 만들어 낸 훌륭한 팀워크 성과다.
독목불성림(獨木不成林)이란 말처럼, 홀로 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정부와 대기업, 중소기업이 협업하여 줄탁(?啄)의 노력으로 시장 문을 두드릴 때, 환경산업 시장은 우리 앞에 무궁무진한 블루오션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