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시작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모든 민간 극장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2013년 대학로 학전그린소극장(1996년 개관)이 문을 닫았다. 배우 김갑수가 운영하던 배우세상소극장(2006년 개관)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2012년 폐관 후 새 주인을 맞았다. 정보소극장(1993년 개관)도 같은 해 운영주가 바뀌었다.
|
70~150석 규모, 지하 1층이나 건물 꼭대기 공간을 빌려 공연장으로 운영 중인 서울 대학로 소극장들의 현실이다. 한때 200여개에 달하던 대학로 일대 소극장 수는 현재 140여개로 줄었지만 여전히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
16일 한국소극장협회에 따르면 최근에만 대학로 소극장 40여개가 부동산 임대시장에 나왔다. 역설적이게도 소극장 부실화의 주원인은 2004년 5월 대학로가 문화지구로 지정된 여파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1960년대 명동, 1960~70년대 세종로, 1980년대 신촌을 거쳐 이제 대학로가 악순환을 겪는 셈이다.
◇비상구 없다…극장운영 난항 “부익부 빈익빈”
연극인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문화지구가 지정된 뒤 대기업의 진출 등을 꼽는다. 정대경 소극장협회 회장은 “오히려 상업시설이 늘고, 연극이 설 수 있는 공간을 앗아버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뒤 땅값이 오르고 이는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 실제로 대학로의 A부동산 중개업자는 “문화지구 지정 이후 매년 평균 10%가량 땅값이 올랐다”며 “홍익·동덕·상명대에 이어 서경대가 대형 공연장을 짓고 있고, CJ와 롯데·대명 등 대기업의 극장 진출도 임대료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최근 극장 폐관 위기에 닥친 대학로극장의 정재진 대표도 “연극인 스스로 자생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것은 실상을 모르는 이들의 얘기”라고 안타까워했다. 정 대표에 따르면 소극장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면 최소 3000만~5000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대학로극장의 경우 티켓가격 2만~2만 5000원선의 공연을 월 30회, 130석을 꽉 채우더라도 수입은 채 900만원이 안 된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게다가 문화지구 지정 후 10년 새 극장 수가 187% 늘면서 출혈경쟁이 심화, 1만원도 안 되는 덤핑표가 판치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정 대표는 “이달 초 끝난 연극 ‘관객모독’의 경우 첫 한 달 수입이 400만원이었다”며 “평균 임대료에 전기료, 수도세 등 기본 경상비, 상주 인건비, 유지 보수비 등을 더하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극장이 1년 내내 공연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인기연극의 경우 대학로 중앙에 위치한 쾌적한 150석 이상의 극장을 원하는 곳이 많아 4~5년 전부터 극장 공실률도 40%에 달한다”고 정 대표는 덧붙였다.
정대경 회장은 “수억원대의 빚은 기본이고 신용불량자의 연극인이 유독 많은 이유가 이 같은 구조 때문”이라며 “극장 운영의 난항은 결국 극단의 어려움으로 이어져 함께 일하는 배우와 스태프의 임금체불까지 생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
“연극계 생태계를 모르는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에 불과하다”(연극계). “연극인·극장소유주·상인·주민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연극인들의 주장일 뿐이다”(서울시·종로구청).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2004년 5월 혜화로터리~이화동로터리 사이 1.5㎞ 구간인 대학로를 연극 실험공간으로 육성한다며 문화지구로 지정했다. 건물에 공연장이나 전시장이 생기면 건물 고도제한을 5층에서 6층으로 완화해주고, 부동산 조세 감면, 융자지원 등의 혜택을 건물주에게 주고 있다.
|
실제로 서울시와 종로구청 문화정책과에 문의해 문화지구 지정 사업 현황 등을 살펴본 결과, 대학로 일대 연극인을 위한 지원제도는 극히 적었다. 지원내용을 보면 크게 ‘권장시설 운영지원’과 ‘문화지구 운영(문화예술 축제 및 프로그램·가로시설 및 조경관리 환경개선·시설물 관리) 사업비 지원’으로 나뉘는데 환경개선 예산과 건물 소유주인 부동산 조세감면(취·등록세 50%, 재산세 50%) 혜택만이 눈에 띄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연극인 대상으로 5000만~1억원까지 융자를 해주는 정책이 있다”며 “다만 은행담보 등 신용 때문에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실질적으로 지원을 받은 건수는 총 10건(5700만원)에 그쳤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시는 종로구청에 용역을 줘 3년에 1회(평가 보고서), 5년에 1회(관리계획 변경안)씩 보고서를 내놓고 있지만 문화지구 지정 당시와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구청 측은 “시청 측 승인이 떨어지면 이번 조사결과에서 발견한 문제점을 개선할 계획”이라며 “기피시설 규제 항목에 고시원 같은 숙박시설에 제한을 두기로 하는 등 연극인을 위한 레지던스와 연극인 쉼터인 예술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다만 “대학로 상인 건물소유주와 주민 연극인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구청 예산 금액도 크지 않다”며 “예술인 정책은 서울시나 문체부에서 따로 지원하는 것으로 안다”고 더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서울시 측은 “전체적인 예술인 지원정책은 ‘문화예술과’에서 진행하지 대학로 문화지구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대학로 소극장’ 구제 대안 있나
“예술인을 위한 지원이 없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정 회장은 “정상적인 연극 활동이 가능하도록 지원을 유지한다면 다른 지역으로 옮기겠다는 극단도 생겨나고 있다”며 “극단 30여개가 모아지면 구체적인 움직임이 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로 내 연우무대 같이 실험성과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흥행작을 올리는 몇 안 되는 곳이 있지만 이미 경영난에 몰린 소극장은 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정 회장은 전했다.
그럼에도 대학로 소극장 중 공공극장이나 일시적 사업지원에 뽑힌 우수 단체 등을 제외하면 국가적 지원은 전무한 상태다. 황두진 서울예대 연극과 교수는 “당연히 땅값이 오르면 임대료가 오르는 것이 맞지만 사실 연극계의 생태계는 이와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이어 “명동과 신촌, 대학로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이 지역개발과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세입자 보호에 관한 기본틀과 예술가의 공헌을 인정하는 부분을 동시에 수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