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책임 `감경`과 `축소`의 차이

류의성 기자I 2012.03.29 06:00:00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29일자 39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류의성 기자] "책임 축소라는 표현보다는 감경이라고 해주세요.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지난 주 주총을 앞둔 한 상장 건설사 관계자 A씨의 말이었다.

감경(減輕)은 부담이나 책임을 줄여서 가볍게 한다는 뜻이다. 축소(縮小) 역시 줄이거나 작게 한다는 것으로 감경과 축소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 관계자는 감경이라고 표현해달라고 했을까.

이번 달 열린 상장사기업들의 주주총회는 `이사 책임 감경제도` 안건이 이슈였다.

이사 책임 감경제도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사내 이사인 홍길동의 주도로 어떤 기업이 100억원을 투자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다고 하자. 그러나 시장 개척에 실패하고 1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홍 씨의 연봉은 1억원이다. 그에게 연봉의 6배인 6억원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이사 책임 감경제도다.

이 제도는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경영을 하고, 대규모 투자 등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하는 경우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즉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이사들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라. 책임은 연봉의 6배에서 묻겠다`는 뜻이다.

국민연금과 소액주주 등 일부 주주들은 이사 책임 감경제도가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때문에 대림산업(000210) 같은 경우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 안건을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분명한 것은 이사의 부정이나 비리 등 범법행위는 책임 감경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거나, 회사의 기회와 자산을 유용하는 경우, 이사가 자기 자신과 거래하는 경우, 배임 등 형사처벌이 되는 행외는 책임이 감면되지 않는다. 이 제도는 미국의 뉴욕주와 델라웨어,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인정되고 있다 한다.

결국 A씨 얘기는 이렇다. "이사 책임 축소라고 표현한다면 부정이나 비리 행위까지도 눈감아준다는 뉘앙스를 줄 수 있다"는 논리다.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그것은 아마도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사 등 경영진들의 배임이나 횡령 등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면서 주가 급락으로 이어지고, 주주들을 울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 기업 관계자는 "도입은 하고 싶지만 주주들의 반대가 심해서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사의 책임 감경 도입은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문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는 기업의 빠른 의사결정과 적극적인 경영을 위한 것이고, 비리 등 불법행위는 이와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좋은 취지의 제도라면 기업 경영진은 주주들에게 충분히 이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확인한 몇몇 기업들의 주주총회 개최 통지서에는 이런 내용을 볼 수 없었다.

주주들을 자극하기 싫다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제도 도입에 소극적인 것은 문제가 아닐까.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회사 경영에 적용해 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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