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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가신퇴진없이 유동성해결에 초점

조용만 기자I 2000.08.13 17:44:20
현대가 13일 발표한 추가자구안에 대해 정부와 채권단은 "만족한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만족"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가 이날 발표한 수정 자구안은 일단 현대건설 유동성문제 해소와 계열분리에 있어서는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요구한 핵심사안중 하나인 가신경영진 퇴진문제는 여전히 확답을 피한 채 시간끌기로 버티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대문제로 인한 시장불안을 조기에 수습하고 새 경제팀이 현대문제로 더 이상 소모전을 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유동성해소 및 계열분리와 가신경영진 퇴진을 맞바꿔 현대사태를 "만족수준"에서 조기봉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한 3개 사항과 현대가 제출한 자구안의 내용을 비교검토해 본다. ◇현대건설 유동성위기 해소 = 현실적으로 실천가능한 방안을 모두 망라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본다는 게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정부가 요구한 핵심은 현대건설이 안고 있는 유동성문제 해소를 위해 부채규모를 4조원이하로 줄이라는 것.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현대건설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매각 등 보다 실현성있고 확실한 자산매각 방안을 제시했다. 안되면 오너의 지분까지 내놓으라는 게 정부-채권단의 요구였다. 외환은행은 현대에 보낸 공문에서 7월말 현재 5조4000억원인 현대건설의 금융차입금을 4조원 수준까지 감축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현금화가 가능한 유가증권 매각 등의 방안을 요구했다. 현대는 이번 자구안에서 부채규모를 4조원까지 줄이라는 요구에 나름대로 성의있는 해답을 제시했다. 현대가 내놓은 방안에는 당초 예상대로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보유한 자동차지분중 6.1%(1270만주, 약2200억원 규모) 매각계획이 포함됐다. 현대는 매각대금을 현대건설 회사채 매입에 지원, 유동성위기 해소와 계열분리를 동시에 충족시킨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매각도 정부의 주장이 수용된 것중 하나다. 현대상선 지분 23.9%(2450만주, 약 1230억원규모)와 현대중공업 지분 6.9%(530만주, 약 2100억원규모) 등을 포함한 계열사 지분을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대부분 매각하기로 했다. 이밖에 현대건설 광화문사옥 등 부동산이나 사업용자산 매각, 이라크 건설미수채권 등 해외 미수자산 회수를 통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자구규모는 총 1조5175억원으로 당초 6007억원에 비해 9168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주채권은행은 이를 연말까지 충실히 이행할 경우 현대건설 부채가 1조4000억원 이상 대폭 감축돼 4조원대 부채규모를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현대가 내놓은 자구방안중 부동산 매각이나 미수자산 회수는 여전히 성사여부가 불투명해 추가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당초 현대가 내놓을 자구안이 연내에 성사되지 않을 것에 대비, 보다 확실한 시장신뢰 회복을 위해 오너일가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매각을 요구했었지만 이같은 방안은 수용되지 않았다. ◇조속한 계열분리 = 계열분리의 걸림돌이 상당부문 제거됐다는 평가다. 현대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보유한 자동차 지분 9.1%중 계열분리에 필요한 6.1%의 지분은 채권금융기관을 통해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현대가 계열분리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고 지분정리 후 계열분리 신청을 하는 대로 이를 승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당초 6월말까지로 약속했던 자동차 계열분리는 다소 지연되긴 했지만 곧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 장자인 MK가 자동차를 그룹에서 떼내 전문소그룹으로 만드는데 걸림돌이 없어진 것이다. MJ 몫인 현대중공업의 분리도 당초 2003년까지의 입장을 1년반 앞당겨 늦어도 2002년 상반기까지 마무리짓기로 했다. 이를 위해 현대는 건설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6.9%(530만주)를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정리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건설이 보유한 지분 6.9%를 모두 정리하고 나면 나머지 주주는 현대상선이 12.46%, 정몽준회장이 8.06%,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0.5% 등의 지분을 갖게 된다. 현대상선의 대주주인 현대건설이 상선을 통해 중공업 경영에 간여할 가능성도 그동안 제기됐지만 이번에 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23.9%를 정리함으로써 그같은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해지게 된다. 계열분리 문제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자동차 지분을 정리하고 현대건설이 계열분리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계열사의 지분 매각방침을 굳힘에 따라 MK-자동차, MH-건설, MJ-중공업 등으로 소그룹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 경영진 퇴진과 지배구조개선 = 3가지 요구사항중 가장 미흡한 부분으로 꼽힌다. 첨예한 대립과 갈등양상을 보이던 문제 경영진 퇴진에 대해서는 현대가 여전히 버티겠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말 현대가 시장에 약속한 3부자 퇴진문제는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가신경영진 중 일부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퇴진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요구였다. 하지만 현대는 이에 대해 "계열사별로 경영책임을 따져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결정에 따라 조속히 처리하겠다"는 종래의 입장을 고수했다. 즉 가신경영진의 퇴진도 이사회나 주총의 결의에 따라 현대가 자체적으로 판단하겠으니 정부와 채권단은 간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이에 대해 진행상황을 점검,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선에서 이를 수용해 줬다. 김영재 금감위 대변인은 "현대가 약속한 3부자 퇴진은 시장에서 평가를 할 것이며 가신경영진 퇴진은 빠른 시일내에 조치를 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계열분리 및 유동성 해소방안을 이끌어내는 대신 가신경영진 퇴진 문제는 양보하는 선에서 모양새를 갖추려 한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다만 이번에 일단은 넘어가지만 현대가 앞으로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정부차원에서 압박이나 조치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했다. 김 대변인은 "현대계열사간 지급보증에 대한 문제는 조사해 조만간 조치하겠다" 말해 현대의 납득할만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감독당국 차원에서 검찰고발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주가조작에 대한 검찰수사나 법원재판 등 일부 가신경영진에 대한 압박수단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대의 자구안은 유동성해소와 계열분리는 일단 만족, 지배구조개선은 봉합수준에서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남은 것은 시장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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