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동태적 일관성 결여와 부동산시장

최은영 기자I 2024.09.25 05:00:00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 정책 발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변함에 따라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어렵게 되면 원칙이 훼손돼 시장의 신뢰를 잃기도 한다. 쉬지 않고 변해가는 경제 상황에 맞춰 미봉책을 세우다 보면 혼선이 벌어져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동태적 일관성 결여’(time inconsistency) 문제가 발생한다. 그때그때 상황변화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정책을 변경하면 시장과 정책이 엇갈리는 ‘신뢰의 위기’가 닥치기 쉽다. 그래서 일단 발표한 정책은 다소의 문제가 있더라도 시장의 신뢰를 위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할 때가 있다. 상황이 변하더라도 원칙을 그대로 지키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어쩐 일인지 고위 인사들은 “부동산만은 자신있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전체 가구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무려 70~80%에 이르는 상황에서 부동산시장을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는 마술피리를 가지고 있는 듯이 비쳤다. 정부 말을 믿고 집을 사지 않거나 아예 판 가구는 집값이 폭등한 후에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으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가격이 들썩이자 안정시키겠다는 선언과 떠벌림이 있었지만 시민은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로 부동산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27회에 걸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고뇌(?)에 찬 발언으로 부동산시장은 불신의 함정에 빠졌다.

윤석열 정부는 처음엔 부동산가격 하락을 우려하다 ‘선호 지역’ 부동산가격 오름세가 심상치 않자 부동산 대책이 가격 안정에서 공급 확대와 가격 억제로 급전했다. 아파트 가격상승이 대출 증가에 있다고 판단한 정부는 대출금리 상승과 대출한도 축소를 유도했다. 각국이 기준금리 인하를 예고하고 정부 여당은 중앙은행에 기준금리 조기 인하를 종용하는 마당에 대출금리는 거꾸로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시중 유동성 M2가 4000조 원을 넘어선 국면에서 부분적 금리상승이 최근 부동산 가격상승을 선도한 고가 지역 부동산가격 하락에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눈앞에 닥친 기후 위기를 맞아 녹지를 보존하고 더 늘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까지 해제하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두려운 정책이 다시 등장했다. 우리가 사는 땅은 현 세대만 아니라 미래 세대들이 오래오래 살아야 할 보석이다. 녹지 훼손으로 당장 작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막대한 해악을 끼치는 일이다. 일부 지역에 성냥갑을 쌓아 놓은 듯이 다닥다닥 지은 고층 아파트는 전근대적 학군제가 개선되고 인공지능(AI)이 발달해 인구가 분산되고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과거 뉴욕 할렘가처럼 퇴화할 가능성도 있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수량 위주의 숨 막히는 밀집 아파트를 짓는 것은 먼 시각이 없는 ‘동태적 일관성 결여’가 아닐까?

불확실성이 높아져 시장심리가 불안할 때 합리적이며 실천 가능한 대책을 선언하면 큰 노력 없이 기대효과를 달성한다. 정책 의지와 방향을 적기에 공표해 시장이 능동적으로 대응하게 만드는 선언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경제순환을 이끌어 시장실패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근거 없는 공허한 발언이나 정책에 대한 실천 의지가 보이지 않으면서 반복되는 선언은 떠벌림 효과(profess effect)로 시장을 교란한다. 게다가 정책 방향과 실천 계획이 엇박자를 내면 시장을 건강하게 유도하기는커녕 혼란에 빠트려 자칫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로 진행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동태적 일관성 결여’ 논리에서 중시하는 신뢰는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합리적 사고와 바른 행동을 예상하게 해 경제 역동성을 높이는 틀이다. 신뢰는 서로 존중하며 협력하는 규범의 바탕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사회적 자본이다.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면 상대방의 진정한 모습을 살피느라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진다. 경제활동의 편익(benefit)은 늘어나고 비용(cost)은 줄어들어 공동체 역량이 누수 없이 경제적 성과로 연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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