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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잔혹사’는 영화 ‘친구’ 이후 가장 성공한 학원액션물이었다. 질풍노도 시기 10대들의 끈끈한 우정에 첫사랑의 기억까지. “대한민국 X까라 그래”라는 마지막 대사 또한 강렬하다. 개봉 이후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마니아층이 수두룩한 레전드 영화다. 다만 영화에는 불편한 진실이 박제돼 있다. 우리의 과거가 정말 그랬을까 싶은 1970년대 후반의 시대상이다.
영화의 배경은 1978년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폭력이 일상화됐다. 학교도 다를 바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과도한 폭력이 매일 되풀이됐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며 정말 손목시계를 풀었다. 전국 모든 중·고교에는 ‘미친개’, ‘피바다’, ‘독사’로 불리며 악명을 떨치는 교사들이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존경받은 직업이었다. 많은 졸업생들이 ‘스승의날’이 돌아오면 모교로 몰려갔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교사의 권위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그 이상이었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 시절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매일매일 9시 뉴스 첫머리를 장식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수십 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교사의 권위는 그야말로 땅에 떨어졌다. IMF 이후 한동안 최고의 직업이었지만 이젠 기피 대상이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들을 찾기 어려워졌다. 교사 집단은 오히려 멸시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교사의 여름·겨울방학을 비아냥거리고 퇴직 이후 연금을 질투한다.
과연 그래도 되는 걸까. 대한민국은 교사를 ‘전지전능한 신(神)’으로 상정한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 탓에 교육은 물론 돌봄까지 요구한다. 수업환경 또한 극악의 난이도다. 사교육 시장과는 환경이 정반대다. 수학을 예로 들면 ‘수포자에서부터 만점자까지’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게다가 새로운 치맛바람도 등장했다. 현장 교사보다 뛰어난 학력과 자산수준을 가진 학부모들의 시시콜콜한 개입은 교사들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추락시켰다.
세계사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은 기적의 나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독립국들은 예외없이 가난과 기아, 부정부패를 겪었다. 우리나라는 더 암울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분단과 전쟁의 암흑기까지 겪었다. 이후 상황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천신만고 끝에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외신의 조롱도 극복했다. 대한민국은 민주화·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세계의 모범생이다. 수많은 저개발국가들이 꼽은 최고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비결은 뭘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건 ‘교육의 힘’이다. 천연자원이 전무한 대한민국의 유일한 무기는 바로 ‘사람’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 자식만은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전후세대의 집단적 헌신 덕택이었다. 대학진학률 80%로 상징되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교육열은 현재진행형이다.
외형적 지표와는 달리 대한민국 교육은 시한부 수준의 중병이다. 교육은 부동산과 더불어 현 단계 대한민국의 최대 난제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법이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특히 최근 서울 서이초등학교의 한 교사 사망사건을 돌이켜보면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어디서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과거 수준의 예우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교사로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권리만큼은 확보돼야 한다. 교사가 무너지면 대한민국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교육에는 진보·보수 이념도 필요없다. 비극이 쏘아올린 소중한 기회를 또다시 헛되이 해서는 안된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